게임 정말 하기 싫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 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신형원 -개똥벌레-
민턴을 칠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운동을 해야 즐겁고 스트레스가 없다.
크리스마스나 명절 전후 같은 특별한 날에는 운동 나오는 사람이 많이 없다. 이런 날은 민턴 고수 A급 들과도 어쩔 수 없이 한 팀이 되어 게임을 들어가야 한다.
내가 다니던 달빛 클럽에도 나보다 한 살 많은 A급 정수 씨가 있었다.
몸도 다부지고 힘도 좋고 운동도 일찍 시작해서 민턴을 잘 친다.
같은 팀이 되기 싫었는데 한게임 하자 해서 할 수 없이 게임을 하게 되었다.
상대 코트 A급 회원은 열심히 쳐주고 장난이 없는데 이 양반은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영 열정이 전혀 없다. 25점 게임 중 스매시를 거의 하지 않고 앞에다 살짝 헤어핀을 놓고 드롭질만 주야장천 해대고 있었다.
(햐! 이 시베리안 허스키를 봤나?) 마음속 쌍 싸다구를 수없이 날려 보냈다.
처음 몇 번은 ‘그래 고수니까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봐주던 나의 인내심과 아량도 게임이 중반으로 치닫자 이 메너 없는 인간에게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게임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싫은 티를 잘 안 내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그 인간과 나 사이 포지션이 겹치는 정 중앙으로 상대방 셔틀 콕이 날아왔다. 왼쪽에 내가 있고 오른쪽에 그가 있었다. 둘 다 오른손잡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왼쪽에 있는 내공인데 오른편에 있는 그 인간이 받아치다가 라켓이 빡 소리를 내며 충돌했다.
일명 코트 내 칼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순간 이 인간이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마디 한다.
“에이 이래서 하수 들 하고는 게임을 치면 안 되는데”
'뭐라고 이걸 지금 조져, 좀 참았다 코트 밖에 나가서 조질까' 사바세계의 수많은 업보들과 갈등하는 것처럼 무수한 번뇌 속에 게임을 하는 둥 마는 둥 끝이 났다. 애초에 이 잉간 하고 같은 팀이 될 때부터 질 게임이라 생각했고 결과는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민턴 셔틀콕은 한통에 12개가 들었다. 한 개에 1,000원쯤 그 당시 기준이다. 지금은 좀 더 상승해서 한통에 만 오천 원 한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기분이 영 언짢았다.
자판기에서 캔음료 두 개를 뽑았다. 잘나신 A급 정수 씨에게 잠깐 밖으로 나오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아까 그 볼은 왼쪽에 있는 제가 포헨드로 받는 게 훨씬 쉽고 제본이 맞는 것 같은데요 “ 했더니 ”이미 끝났는데 돌이키면 뭐해요? “ 이런다.
”굳이 내가 게임 쳐달라고 말 한적 없고 한게임 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도 정수 씨고 그렇게 성의 없이 설렁설렁 급수 낮다고 깜보고 플레이 중에 스메싱도 거의 하지 않고 이러는 게 같은 편에 대한 메너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
차분한 나의 말에 당황했는지 정수 씨 순간 얼굴이 벌게지더니 담배를 꺼내 문다. 이쯤에서 나는 결정타를 날렸다. ”실력만 키우시지 말고 메너도 좀 같이 키우시지 그러셨어요 “
그날 이후 정수 씨와 나는 누구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클럽을 옮길 때까지 한 번도 같이 게임을 들어간 적은 없다.
사람이 살면서 가슴속에 담아둔
얘기를 다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초급이라도 서툴 더라도 인기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직장생활도 고달픈데 즐겁자고 시작한 민턴장에서 이런 수모까지 참고 견디며 민턴을 할 필요는 없다.
10년 구력자가 된 지금, 초보 들이나 후배들이 한게임 부탁을 하면 열심히 쳐주려고 애쓴다.
초보때 당한 설움과 스스로 약속했던 니들보다 나은 인간이 될 거야 라는 다짐. 천만 다행히 나름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아놔!!! 실력이 A급이면 뭐하니? 하는 짓은 D급도 못 되는 똥급인데 이런 인간들 어디 인간성 길러주는 초능력 코치 샘은 안 계신가요?
코트 내에서나 코트 밖에서나 직장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