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밖의 모든 말들
“ 그 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모든게 늦었다고 생각했었다.”
⠀
그냥 아침에 눈을 떴을 뿐인데 우울하고, 아무 것도 안 했는데 힘이 빠지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날 밖이 컴컴해지더니 비까지 내리면 마음은 더 차분해진다. 내리는 비를 어쩌면 비소리를 보고 듣고 있다보면 마음이 짙어지고 비도 점점 짙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짙어짐을 느꼈다. 비가 차분히 온 자연을 부드럽게 적시고 적시며 세상을 온통 초록으로 짙게 하듯이 김금희 작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짙게 물들였다.
⠀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고, 온통 불공평한 것 같지만 또 공평한 세상인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은 항상성을 유지하며 돌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한 세상을 살면서 갖을 수 있는 기쁨의 양과 슬픔과 고통의 양 그리고 행복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지금 특별히 더 기뻐할 것도 그렇다고 또 더 슬퍼할 것도 없다. 불행과 행복은 기도하고 바란다고 해서 줄지도 더 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
아직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늦었다고 생각하며 아등바등 앞만 보며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리개를 하고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달리는 것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바람과 하늘을 느끼지 못하고 트랙만 보며 달리고 있지는 않나? 우리가 추구하는 완벽, 목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가? 그것을 이루고 나면 또다른 완벽함과 목적을 위해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우린 평생 달리는 것의 즐거움을 바람이 살갗을 간지르는 느낌을 지금의 행복을 지나쳐 버리고 말것이다.
⠀
지금, 너무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오늘, 완벽하지 않고 목표 근처에도 도달하지 않은 오늘,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오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하기 싫은 오늘, 좋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 오히려 걱정이 되는 오늘,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 모르게 일이 안 풀리는 오늘 ... 그런 오늘들 그리고 그런 오늘들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매일 빙글빙글 쳇바퀴 같은 여기가 사실은 내 행복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파랑새는 지금 여기에 있고 내 앞의 사람이 파랑새 일 수 있다.
⠀
일상의 행복을 그리고 그리움을 아픔을 그리고 기쁨을 그려낸 작가의 단어의 힘, 문장의 힘, 책의 힘, 그리고 생각의 힘을 내 세포 하나하나까지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김금희작가 님과 밥 한끼 하고 싶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가님과 한 공간에 앉아서 함께하고 싶다. 그러면 나도 작가님에게 조금 물들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