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by 이작가


“어, 미안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차별은 우리 삶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평범하고 선량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에 따라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주변 곳곳에 순수한 얼굴로 결정장애란 표현을 사용하고,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 다 되었다’고 칭찬까지 해준다. 언뜻 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희망이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는 한국이니 아니었고 지금도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을 내포한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을 반대한다. 사람들은 평등이라는 개념을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발점부터 다른 사람들을 각기 다른 출발선에 서게 하고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출발선이 다른 경쟁은 평등이 아니다.


순풍과 역풍의 예를 들어보자.

역풍은 크거나 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련이고,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일부의 삶을 힘들게 한다. 역풍을 맞으면 달리는 속도는 줄어든다. 그러므로 몇 배나 더 열심히 달려한다. 역풍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 순풍을 맞으면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순풍을 맞으며 달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지하지 못한다. 순풍의 영향으로 최고 기록을 달성하게 된 것을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처럼 어깨에 힘을 줄 것이다. 역풍을 맞으며 달리는 사람은 더 열심히 달리겠지만 훨씬 더 느리고 게으른 사람으로 비친다. 달리고 달리다 지쳐 쓰러지거나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어 또 차별을 시작한다. 세상이 기울어져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평등을 찾다 보면 불평등한 해법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특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군다나 평등을 제로섬 게임(zero-sum)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그러니까 총량이 정해진 권리에 대한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누군가의 평등이 나의 불평등처럼 느끼는 것이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어느 곳에 서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어느 곳에 서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 있는지, 내가 서있는 곳이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이 얼마만큼 기울어져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내 자리에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차별을 부정하라 대가 아니라 우리가 인지조차 하지 못 한고 있는 차별을 더 발견해야 할 때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이 더 낫다고 판단될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적 시선과 규범 때문에 그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된다. 그때 누군가를 비하하고 비하하는 조롱하는 유치하고 치졸한 농담에 웃지 않는 것 ‘반응 없는 반응’ 만으로도 그런 행동은 잘 못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금은 내가 차별하는 쪽에 서서 으기양양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차별당하는 쪽에 서서 농담에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부당한 일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의심도 품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니지만 이 차별의 칼날이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남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 ‘반응 없는 반응’ 만으로도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잘 못 되었다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나도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누구든지 노력과 능력으로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킨다.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기준은 누구에게는 유리하고 누구에게는 불리하게 편향되어 있지는 않는가?


어떤 회사의 지원 조건이 토익점수 600점 이상 다. 청각 장애인이 그 회사에 지원하고 싶다. 그런데 990점 만점 중 495점이 듣기 점수라면 이 청각 장애인에게는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차별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쥔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이 되는 것이다. 또한 능력은 한 가지가 하니며 그 능력 하나가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성적이라는 획일화된 평가기준으로 서열화해서 결과가 낮은 사람의 자존감이 상하고 온갖 기회에서 배제되는 상황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차별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차별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차별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 속에서 차별을 찾아내고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우리는 끊임없는 배움이 필요하다. 읽고 생각하고 쓰며 차별을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흡수된 생각은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다닌다. 더 배우고 더 생각한 것들이 실구름처럼 머릿속 여기저기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런 앎들이 모이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구름은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되어 땅에 스며든 그 사유들은 세상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씨앗이다. 그런 씨앗들이 또 떨어지고 떨어지면 우리 사유의 구름은 또다시 비를 내려 씨앗들이 싹트게 할 것이다. 그 씨앗이 세상에 무엇으로 피어날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평등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지만 말고 위치를 바꾸어 서서 서로를 마주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차별을 느꼈다면 정중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것이 차별인 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의미 없이 했을 언행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을 하나 둘 감지하고 함께 싸울 수 있다.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평등도 기다린다고 저절로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며 더 많이 찾아내야 한다. ‘어,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하고 한 발 물러서지 말고 그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상처가 잘 아물 수 있게 지켜봐 주고 더 이상은 그런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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