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두 개를 가지는 것과 나에게서 하나를 빼앗고 다른 사람에게서 두 개를 빼앗는 것 중 선택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다. 내가 하나를 가지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이 두 개를 빼앗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들을 모독하고 처참히 무너지게 해야 속이 시원하다.
우리는 혐오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혐오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이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이다. 혐오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이 고통이나 불안 그리고 분노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를 계급화하고 그 서열에 맞게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한다. 자신이 받은 차별과 혐오를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더 심하게 차별하고 더 악랄하게 혐오한다.
세대를 혐오하고 이웃을 혐오하며 타자를 혐오하고 이념을 혐오한다.
국가는 부유해지고 먹고살 만 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빈부격차와 실업이 뒤 따라왔다. 그에 따른 불안과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푼다. 윤택해진 삶과 반대로 마음은 사막화되어가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다. 모든 평가의 기준은 자신에게 두고 자신의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혐오 대상으로 삼는다. 자신도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서로를 서로가 혐오하고 혐오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공짜밥을 먹는 청소년을 “급식충”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한 20대 청년들을 “정치 무식자” 자신이 아이를 위해 무엇 일이든 하는 엄마를 “맘충” 노인들을 “연금충”이라며 혐오한다. 청소년들의 학업 문제, 20대의 청년 실업 문제, 아이를 낳아서 어려움 없이 키워낼 수 있는 사회 문제, 노인들이 연금을 받아 생활하며 봉사할 수 있는 사회 기반 구축 문제는 어쩌면 사회가 책임 쳐야 할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사회 지배층은 혐오 메커니즘을 통해 전가시켜 버린다. 어쩌면 정치권에 쏟아질 법한 불만과 분노는 서로를 혐오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유도된다.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여성,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세월호 피해자들, 탈북민, 조선족들을 혐오한다. 근본도 없는 계급적 인종적 우월감으로 무엇이 잘 못 됐는지도 모르는 말과 행동들이 이제는 공기처럼 익숙해져서 내면화되어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나도 모르게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할 수 있는 마음으로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혐오당하고 또 혐오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내가 혐오했음을 그리고 또 내가 혐오당했음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인식했다면 변화할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하며 변해가면 된다. 나도 모르게 혐오의 프레임 속에 갇혀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거대 세력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객관적인 시야를 갖기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