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렸던 때부터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칭찬과 인정을 늘 갈망했다. 그것을 잘 아는 부모님은 언제나 칭찬 전략을 사용했다. 하나의 칭찬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조그만 아이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이렇게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인생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문제를 피할 길도 있지만 막다른 길도 있고 갈래길도 있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 즐겁고 설레기도 하지만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쭉 뻗은 뻔한 길을 가끔은 아니 요즘은 자주 희망한다.
조그만 아이에게 칭찬은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았다. 그 아이는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매일매일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칭찬들을 일이 줄어들었다. 몸을 자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칭찬을 기다리는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 주인이 찾아와 주길 바라며 끝도 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언제나 칭찬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그리워했다.
모르는 것도 아는척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고, 칭찬을 받고 모두에게 부러움의 눈빛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들을 질투했고 미워했고 부러워했다.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잠을 덜 자고 더 많이 노력했다. 그렇게 이기고 나면 또 다른 능력자가 나타난다. 끝이 없는 비교와 질투 속에서 마음은 딱딱해져 갔다. 질투는 삶의 원동력이었기에 내려놓지도 못 한다. 그 순간 전력이 끊겨 내 삶은 멈춰버릴 테니까. 두려웠다. 내 인생의 전원이 꺼져 깜깜해질까 봐. 그래서 놓지 못하고 피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잡고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1000톤의 망치가 되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머리를 강타했다. 잡고 있었던 것을 살며시 놔도 될 것 같은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 믿고 살아왔지만 사랑 좀 못 받으면 어떠한가. 칭찬을 못 받아도 사랑을 못 받아도 나는 그냥 나였던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결코 다 알 수 없다. 가끔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하물며 모르는 것이 어떻게 아는 것이 되겠는가. 아는 것을 안 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었을 때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거였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했다. 죽기는 싫었던지 아직도 누군가를 질투하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며 연기를 할 때가 있다. (연기를 했다면 여우조연상쯤은 따놓은 당상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를 느낄 때마다 지금까지 칭찬을 받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소름 돋게 좋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당연한 이치를 알기 위해 참 많이 돌고 돌았다. 그 과정에서 아프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고 울기도 했지만 그렇게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 었다. 그 과정들 속에서 행복했고 즐거웠고 성취감과 자존감도 느끼며 좋았다. 때론 괴롭기도 했지만 행복한 일들도 넘쳐났다. 질투를 원동력 삼아 칭찬이라는 날개를 달고 앞만 보고 달렸던 때도 좋았지만 이제는 못 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노력하고 또 잘하는 것은 스스로 칭찬하는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