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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Dec 03. 2022

Taeyong, who are you?


  태용씨가 생각하는 태용씨의 성격이 어떤지 묻습니다. 이어지는 설명 속에 어쩐지 모순점이 하나 둘 나타납니다. 사람들과 큰 갈등이 없이 무난한 성격인 데다, 먼저 화해하고 양보하는 편이라고 했다가 돌연 고집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기도 했고요. 무른 편이라고 했다가 남이 얘기하는 거 절대 함부로 믿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아마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태용'도 '저태용'도 불쑥불쑥 끼어든 모양입니다. 태용씨가 누구인지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인터뷰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요, 누구든 그렇지 않나요. 나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나이기에 가장 어려운 일일 테지요. 오히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어떤 면에서는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딸인 나의 시선을 곱씹어 봅니다. 태용씨는 말이죠. 마음만 먹으면 술이든 담배이든 단칼에 끊어버리는 지독한 면이 있는 사람이지요. 한번 시작한 일도 당연히 끝장을 보고요. 흥도 넘칩니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딸과 춤도 추고요, 노래도 부르죠.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말하고 봅니다. 때에 따라선 사이다 같은 발언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딸인 내가 바락바락 대들거나 짜증도 많이 부렸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딸의 편이었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태용씨는 그랬지요.


  가족 밖에서의 태용씨를 목격한 날로 돌아가 볼게요. 어느 날 태용씨와 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건축탐방'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막 핫플레이스로 부상 중이던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탐방하는 코스였습니다. '산동네', '산복도로'로 대표되는 부산의 특성이 잘 반영된 마을에 문화적 코드를 넣어 관광지화가 된 곳이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탐방코스는 훌륭했고요, 태용씨는 낯설었습니다. 나와 춤추고, 티비에 나오는 배우의 연기를 따라 하고, 느낌이 오면 노래를 부르는 '흥부자 태용씨'는 온데간데없었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조용히 코스를 따라 탐방했지요. 간혹 다른 건축사 분들이 말을 걸어와도 짧게 답하고 가볍게 미소만 지어주었습니다. 당연히 먼저 말을 거는 법은 없었고요. '파워 내향인'으로서의 태용씨를 목격한 날이었습니다. 태용씨의 새로운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거울을 보는 듯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태용씨의 딸인 나는, 가족들에겐 재간둥이에 (간혹) 애물단지이지만, 회사에서는 친절하고 조용한 재씨거든요. (이 글을 읽는 가족들은 믿지 못할 테지만.)


  하나의 특성으로 수렴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겁니다. 필요에 따라 나의 모습을 달리하는 것도 좋은 처세술일지도요. 이런 태용, 저런 태용이 모여 단 하나뿐인 태용씨가 되었을 거니까요.


유난히 내성적인 아빠의 갈대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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