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언 Dec 02. 2022

양은주전자에 삼겹살을 구우며.

  태용씨는 요리를 잘합니다. 또래 중에는 아내 없이는 밥도 못 먹는 분들도 있지만은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태용씨의 모습은 나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주 종목은 해산물 손질과 요리. 지금도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자갈치 시장에서 사 온 냉장 연어를 직접 해체합니다. 철마다 싱싱한 숭어와 오징어, 전갱이를 회 뜨고 초밥도 만들어 먹습니다. 물회도 일품이지요. 가끔 나의 친구들이 태용씨의 직업을 일식 요리사로 착각하기도 할 만큼요.


  태용씨는 또한 창의요리랄까, 아니 섞어요리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바로 면. '면은 1년 365일 주도 묵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면덕후거든요. 어느 요리든 아쉽다 싶으면 면을 추가하고자 하지요. 라면 하나의 양이 아쉬울 때도 국수를 조금 삶아 넣기도 합합니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거나 꺼려질 수도 있지만은 딸인 내가 맛은 보장할 수 있죠. 저도 왜 그게 맛있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요.


태용씨표 연어초밥 (사이즈가 커서 김을 둘러야함.)


  음식은 또한 추억을 실어나릅니다. 태용씨와의 함께 나눈 음식 중 나에게 기억나는 음식은 단연 '삼겹살'입니다.


  태용씨네 가세도 꿀렁꿀렁 기울었다 솟았다 했습니다. 태용씨가 40대이던 때 느닷없는 IMF 사태는 전문직의 수익구조를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금전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대다수의 동기 건축사들도 전업을 했지요. 다행히 처남 재융씨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태용씨 50대 중반 즈음, 다시 한번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가 가장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어려웠지만 함께 먹은 삼겹살이 있었거든요. 소박한 휴가로 작정천을 찾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어요. 조리도구는 양은 주전자. 열전도가 좋은 데다 기름도 튀지 않아 완벽. 물은 차갑게 흐르고 고기는 지글지글, 잠시나마 경제적 시름에서 벗어나 태용씨네 가족 모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즈음 태용씨네는 현실에 밀리고 밀려 이사를 하게 됩니다. 아파트가 아닌 다가구주택에 세 들어 살게 됩니다. 오래 살던 아파트에 비하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때도 보석 같은 순간은 있었습니다. 또 삼겹살인데요.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죠. 따뜻한 부산은 폭설이 내리면 일상이 마비되곤 합니다. 그렇게 태용씨는 출근을 포기했고, 딸인 나는 등교를 포기했었죠. 그리곤 삼겹살을 사다가 베란다에서 구워 먹었습니다. 뷰라고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이웃집들과 눈쌓인 비탈길뿐이었지만요. 오랜만에 내린 눈이 온 동네를 감싸 안은 듯 마음은 괜시리 포근해졌던 기억입니다.


아, 오늘 저녁엔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겠습니다.


아빠와의 추억 속 삼겹살



이전 17화 세는 인간, 이태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