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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Nov 30. 2022

아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얼마 전 한 유치원에서 <우리 아빠 차> 에 대한 숙제가 논란을 빚었었죠. 아빠 차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숙제였지요. 아이들이 차종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한부모 가정이나, 자가용이 없는 가정의 경우 숙제를 할 수조차 없다는 문제도 있었죠. 숙제를 내 준 선생님이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맞습니다만, 다른 질문지들을 펴보니 원래의 의도는 차와 함께한 추억을 발표하는 것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자동차를 처음 탔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자동차는 누구와 가장 많이 탔나요?'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갔던 곳 중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같은 질문이 있었거든요. 내가 태용씨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고요.


  '차'라는 매개체는 운전자와 동승자를 물리적으로 실어나릅니다. 실어 나르는 시간과 거리만큼 다양한 감흥과 추억도 실어 나를 수밖에요. 태용씨가 살아온 세월만큼 함께한 차도 추억도 켜켜이 쌓여왔습니다.  태용씨의 첫 차는 현대자동차의 '엑셀'이었습니다. 계획형 J인 나에게는 너무 무모하게 들렸지만요, 태용씨는 첫 차를 계약할 당시 무면허인 상태였다고 합니다. 계약 후 출고까지 2개월 정도 걸리니 그 사이에 면허를 취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요. 출고를 보름쯤 앞두고 정식 운전자가 된 태용씨는 어느덧 경력 30년이 훌쩍 넘는 베테랑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엑셀' 이후에도 '프린스', '포텐샤', 'SM5'등의 차들이 태용씨의 드라이버 인생을 함께하지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도 책으로 된 지도를 보며 전국 곳곳 열심히 다녔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어 뜻밖의 곳에 당도하기도, 계획했던 여행의 경로가 바뀌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조수석엔 아내 경애씨가, 뒷자석엔 오빠와 내가 앉아있었겠지요.


  그렇게 태용씨가 30년 이상 숙련된 드라이버가 되는 동안 나는 태용씨의 차를 뻔뻔하게 얻어 타는 딸로 자랐습니다. 늦은 시간 야자를 마칠 때도, 대학생이 되어서 1교시에 늦을 것 같을 때에도, 심지어 직장인이 된 어느 금요일 퇴근길에도 태용씨는 나를 실어 날랐습니다. 이 정도면 1세대 픽업대디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지요. 태용씨의 마중과 배웅의 드라이빙 덕에 나는 가끔 통학, 통근길의 고단함 대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요. 어느 날 문득, 얻어 타는 나의 편안함과 운전자 태용씨의 편안함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고 묻습니다. 귀찮지 않냐고요. 그에 태용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재밌다이가, 취미생활이다."


포텐샤의 위엄 (출처:네이버블로그 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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