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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Dec 09. 2022

다정한 부녀 외식과 다정하지 못한 알러지

  어느 해 겨울, 아내 경애씨가 없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태용씨와 둘만의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로 이직이 결정된 터라, 태용씨와 둘만의 식사 기회는 더 없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년간 쌓아온 검색력을 발휘하여 집 근처 맛집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치열한 검색 끝에 누룽지 삼계탕이 낙점되었지요. 밥도 되고 술안주도 되는 데다 뜨끈한 국물까지 푸짐할 테니 부녀 외식 메뉴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죠.


  식당에 도착해서 삼계탕을 시키자 각종 밑반찬과 함께 인삼주가 서빙되었습니다. 술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태용씨이기에 소담한 잔에 한잔 따라 드렸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드디어 삼계탕의 등장! 블로그에 쓰여있던 찬사만큼이나 맛있었습니다. 고소한 누룽지에 진한 국물까지 말이죠. 밑반찬들도 어찌나 맛깔나던지요.


  그런데, 태용씨는 어쩐지 눈이 좀 가려웠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밑반찬을 더 가지러 셀프바에 갔다가 실컷 담아 돌아왔죠.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태용씨의 눈이 부어있습니다. 반찬을 가져오는 그 잠시 동안 부은 것 치고는 양상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 말야야 한다 옥신각신 했어요. 나는 가야 한다, 태용씨는 괜찮다 이렇게요. 그런 실랑이를 하는 동안 목도 답답해 온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겁이난 나는 119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119를 타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하는 그 몇 분이 나는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구급대원들에게는 흔한 일이겠지만 우리 부녀에겐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었지요. 응급처치를 받는 태용씨와 보호자석에 앉아 있는 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요.


  다행히 링거를 맞고 알러지가 차츰 가라앉았고, 저녁 무렵 귀가할 수 있었지요. 다정한 부녀의 회식이 이렇게나 길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요. 그날은 제 인생에 있어 태용씨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종종 서로를 무심하게 대하게 했어요. 언제든지 '내 편'이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쉽게 소홀하게 되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그날, '내 편'인 사람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수는 없다는 걸 태용씨만큼이나 부은 눈으로 깨달았죠.


이제, 태용씨의 건강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볼까 봐요. 병원 가시라, 검진받으시라 귀찮게 굴지도요. 부디 딸내미의 사랑이 담긴 잔소리라고 생각해 주시길.


알러지의 원인은 정확하게 진단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출처:위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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