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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Dec 08. 2022

로또 1등이 된다면,

  가끔 아침에 출근을 하다 보면 '아~ 로또나 되고 싶네.'라는 마음이 불쑥 솟곤 합니다. 일확천금의 행운이 오긴 어렵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잠시 즐겁달까요. 태용씨에게도 물었습니다. 로또가 된다면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일부를 기부하고 남은 금액을 기준으로, 40%는 아들에게,  40%는 딸에게, 나머지 20%로 아내 경애씨와 노후에 쓰겠다고 했어요. 계산이 깔끔하게 떨어지게끔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태용씨 답습니다. 자식들에게 과감히 80%를 내어주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물려줄 게 많지 않은 아쉬움이 다소간 배어있겠지요.


  나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을 때 흔하지 않은 답이 돌아왔어요. 딸인 나에게 오래간 모아 온 월간지 <건축사>를 물려주고 싶다고 했거든요. 태용씨에게는 자부심과 같은 잡지들이거든요. 나에게도 <건축사>라는 잡지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태용씨가 건축사인 덕분에 매월 양질의 정보가 담긴 잡지를 교재 삼아 받아볼 수 있었죠. 지금도 사무실 책장, 가장 시선이 잘 닿는 곳에 오래전부터 쌓여온 <건축사> 잡지들이 자리 잡고 있지요.


  그래요. 돈도 좋고, 집도 좋고, <건축사> 도 좋죠. 하지만 태용씨가 물려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태용씨 만든 공간들입니다.


어릴 적 다니던 성당은 태용씨가 설계를 했던 곳입니다. 나는 그 성당에서 주일학교도 다녔고, 첫 영성체도 했고, 견진성사도 받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보내드렸어요. 꼬맹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따금씩 들러 재밌는 추억도 쌓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도 하는 추억의 깃든 곳이 된 거죠. 미색의 박공 형태의 성당은 아마도 오래오래 내 유년의 공간적 배경으로 남아있을 거예요.


또 몇 해 전에는 해운대역을 중심으로 일명 해리단길이 핫해졌지요. 그중 일식 카레집인 <카가와 식당>이 입소문을 타고 꽤 유명해졌습니다. 그 가게도 태용씨가 설계한 근린생활시설 1층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친구들을 대동하고 그 가게로 들어서며 짐짓 자부심 있게 자랑했습니다.


"이 건물 우리 아빠가 설계했다이가."


이런 기억들이 담긴 장소를 남겨줄 수 있다는 건 태용씨가 건축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거예요.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내구연한은 평균적으로 100년이니 아마도 태용씨나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건물들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태용씨가 선으로 면으로 만들어낸 공간들을 남겨주는 것은 그 어떤 유산보다 근사하고, 소중하고,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남겨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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