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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Dec 06. 2022

아빠의 삶을 조금 따라가 보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즈음, 어떤 행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각자 부모님 혹은 본인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당시 태용씨가 설계했던 건축물들의 모형 세 점 정도를 전시에 냈었죠. 그중 하나는 주택모형이었는데요, 그 안에 가구들까지 미니어처로 만들어 실감 나게 만들어져 있었어요. 다른 전시물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고퀄리티의 작품에 괜시리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입니다. 친구들이 이게 뭐냐고 물을 때마다 자랑스럽게 대답했죠.


"우리 아빠가 만든기다."


시간이 흘러 수능을 치른 나는 태용씨가 졸업한 같은 학교 같은 건축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인싸적 기질이 부족한 탓에 큰 이슈는 되지 못했지만 동기들 사이에 소소한 이야깃거리는 되었죠. 태용씨를 가르쳤던 교수님이 그때까지 현직으로 계시기도 했으니까요. 동기들이 왜 태용씨와 같은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을 때 저는 그렇게 대답했어요.


"우리 아빠가 하는 일이 멋있어 보여서 그랬는 갑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건축사도 아니고 설계를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태용씨와 같은 분야의 공부를 했던 5년은 만족합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부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아빠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이기도 하지요.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전공 선택은 실패겠죠. 그렇지만 태용씨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5년은 결코 실패가 아닌 오히려 값진 시간이었다고 믿습니다.


내가 태용씨의 전공을 따라나선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는 태용씨. 우리 부녀는 같은 공부를 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남들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부녀 사이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는 나를 목마태워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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