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횡단 크루즈
하와이를 떠난 배는 아메리칸 사모아에 도착할 때까지 5박 6일 동안 바다 위를 항해할 예정이다.
인터넷도 안되고 전화도 안된다. 할 일이라고는 먹는 일과 오전 오후 한차례 씩 강의를 듣는 일이다,
영화관에서 날마다 영화도 보여준다. 팝콘과 음료수도 그냥 준다.
해가 뜨면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9층에 있는 리도식당은 가볍게 먹는 곳이다. 많이 먹으면 결코 가볍지 않다.
아침식사다.
뉴욕타임스를 발췌해서 식당문 앞에 놓아둔다. 아침을 먹으며 간단한 주요 뉴스는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나온 크로스 퍼즐과 수도쿠도 인쇄해서 군데군데 놓아둔다. 크로스워드는 내게 너무 어렵고 수도쿠는 너무 쉽다. 하루에 세 개는 심심해서 풀어본다.
바다 위에만 있는 날은 데크에 나가 걷는다.
네 바퀴를 돌면 상당한 운동이 된다. 운동을 좀 하고 나면 좀 화려한 저녁을 먹어도 덜 미안하다.
2층과 3층에 있는 식당은 정식을 준다. 자리에 앉을 때는 의자를 밀어주고
앉으면 냅킨을 무릎에 놓아준다.
그런 대접을 받는데 익숙하지 못한 나는 좀 불편하지만 하지 말라고 거부할 수도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렇게 풀코스로 먹으려면 항상 미안했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돌아와 가끔 그리운 건 배 안에서의 훌륭한 식사 시간이다. 음식도 좋고 친절한데 날마다 가지는 않았다.
9층의 간이식당이 마음이 더 편했다.
육지에서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며 캠핑을 하고 내 손으로 밥을 해 먹던 여행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크루즈 여행이다. 딱히 내 취향의 여행은 아니지만 대단히 좋은 점도 있다.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이른 아침 창 밖을 내다보니 육지가 보인다. 여기는 미국령 사모아섬이다,. 하와이를 떠난 지 엿새, 배를 탄지 20일 만에 사모아에 도착했다. 내가 만날 국립공원이 여기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 63개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국립공원이 여기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려면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여길 오는데 열네 시간이 걸린다. 비행기는 일주일에 두 번만 있다. 알래스카의 국립공원을 모두 보고 난 후 미국의 국립공원을 완주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여길 어떻게 가야 할지 많이 생각했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도 한 번쯤은 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크루즈를 하기로 했다.
배는 컨테이너들이 잔뜩 쌓여있는 부두로 천천히 다가갔다. 배가 항구에 닫기도 전에 구급차 한대가 급히 들어온다. 배 안에 응급환자가 생겼나 보다. 들것이 배 안으로 들어오더니 조금 후 환자 한 명이 실려 나간다. 배 안의 승객 대 부분이 노인층이니 긴 여행에 환자가 생길 만도 하다. 배 안에서 사망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크루즈 회사에서 주관하는 일일 여행을 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자기가 알아서 자유여행을 할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나갔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훈훈하다.
크루즈에서 주관하는 여행은 값이 30%에서 두 배까지 비싸다. 그 대신 만에 하나 배가 떠날 시간까지 여행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배가 기다려 준다고 한다.
개인이 밖에 나가서 돌아다닌 경우에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배는 그냥 떠나 버린다는 이야기다.
화려한 장식을 한 버스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이 동네는 버스는 많은데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2불이면 탈 수 있지만 시간 안에 돌아오지 못할 까봐 35불을 내고 국립공원에서 마련해 주는 버스를 타야 했다.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다.
사모아에서는 남자들이 치마를 입는다. 그래서 국립공원 레인저들도 여기서는 특별한 유니폼을 입는다. 아메리칸 사모아 국립공원 레인저가 부두까지 나와 안내를 해 준다.
미스 사모아도 나와서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사모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텐트 밑에 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가 그치고 출발시간이 40분 정도 남아 있어 팡고팡고 (PAGOPAGO라고 쓰고 팡고팡고라고 읽는다) 시내 쪽으로 나가 걸었다.
노천시장에는 옷감 파는 사람 염색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그 사이에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한다. 비가 그치면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9시 반 국립공원 가는 사람 26명이 모여 버스에 올랐다.
낡은 트럭을 개조한 버스의 의자는 평균 크기의 미국사람들이 앉기에 힘들 정도로 좁았다
유리창도 대충 만들어 비가 오면 절반의 비는 안으로 들이쳤다. 덜컹거리면 머리가 천정에 부딪친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농담해 가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 섬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3000년 전부터다. 120년 전 미국령이 되었다.
사모아 사람들은 대체로 체격이 크고 힘이 세고 용감하고 가족 간에 유대가 강하다고 한다.
가족이 죽으면 자기 집 마당에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령이지만 미국시민권이 주어지지 않고 투표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와 사모아어를 하고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밝았다.
우리를 안내한 국립공원 레인저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도 미국의 원주민들이 키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공장소에서 모여 회의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은 가족 간의 대화가 스마트 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래도 이 섬은 희망이 있다. 인구의 사분의 일이 15세 미만이다.
여기는 아메리칸 사모아 7개의 섬 중 제일 큰 투투일라 섬, 팡고팡고항에서 낡은 버스가 힘들게 올라와 잠시 멈춘 곳이다. 숲은 잘 우거져 있고 바닷물은 푸르다. 이 숲에는 몸에 좋다는 노니, 바나나, 코코넛이 널려있어 아무나 따서 먹을 수도 있다.
이 숲의 나무들과 꽃을 보호하기 위해 2500 에이커의 땅과 , 바닷속의 산호초, 그리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1200 에이커의 바다를 1988년 미국 의회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지만 땅을 구입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사모아 부족의 추장이 50년 간 땅을 빌려 주는 것에 합의해 사모아 사람들과 미국의 국립공원이 함께 보호 관리하기로 약속했다.
이 사람은 코코넛 열매를 손으로 쓱쓱 긁어 오늘 자기의 점심 이라며 먹었다.
버스를 잠시 나무 아래 세우고 사모아 청년들이 코코넛 열매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어떻게 이 안에 있는 주스를 마셔야 하는지 알려 주는 대로 따라 하니 정말 쉽게 된다. 요령을 모르면 거의 불가능이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주스가 들어있다 코코넛을 갈아 코코넛 밀크를 짜서 파란 바나나를 넣고 끓여 여기 온 사람들에게 먹어 보라고 권한다. 먹어 보니 찐 감자 맛이다. 여기 사람들의 주식이란다.
바닷가로 나갔다. 죽은 산호들이 널려있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해 산호초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2050년경에는 이 근처의 산호초가 전멸할 것이라는 무서운 예측이다.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바닷가이지만 아주 먼 곳에서 일어 나는 일들의 결과가 여기까지 미친다는 것이 무섭다.
아메리칸 사모아 국립공원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 저 아래 항구에서 배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내가 타고 온 저 배도 이 아름다운 자연을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모아를 구경하고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줄이 꽤 길다. 국립공원을 본 사람들도 있고, 걸어서 시내 구경을 한 사람들, 오랜만에 와이파이가 되는 맥도널드에 가서 이 메일을 체크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굿바이 사모아..
배가 섬에서 멀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아쉬운 듯 섬에게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