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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26. 2023

날짜 변경선을 지나

태평양횡단 크루즈

 밤 사이 하루가 없어졌다.

14일 아메리칸 사모아를 떠나 하룻밤을 자고 나니 16일이다. 날짜변경선을 지났다. 여기는 새해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곳이다. 2000년이 되었을 때 밀레니엄 아일랜드로 이름을 바꾼 섬도 있다. 

배가 계속 서쪽으로 항해하며 경도 15도를 지날 때마다  한 시간씩 변 했는데 이 날은 통째로 하루하고 한 시간을 바꿔야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런던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돌았다. 전재산을 걸고 80일 동안 세계를 한 바퀴 돌면 내기에서 이기는 거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를 80일 안에 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온갖 고생과 모험을 하며 알프스를 넘고 미국을 횡단하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과 인도를 지났다. 인도에서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 여자를 구해 영국까지 데려갔다. 런던에 도착했는데 80일 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내기에서 진 줄 알고 자포자기했는데 인도에서 구해 온 여인과 결혼을 하려고 교회에 가서 목사에게 물으니 일요일은 결혼을 시켜 줄 수 없다고 해  자신이 동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하루를 벌었다는 걸 깨닫는다. 


1522년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돈 유럽 사람이 날마다 일기를 썼는데 집에 도착하니 하루가 달라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날짜변경선은 영국의 그린위치 천문대의 정 반대쪽에 있다. 영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을 1873년 바다에 줄을 긋고 날짜변경선을 만들었다. 그때는 직선이었는데 지금은 직선이 아니다.

같은 나라가 다른 날짜로 살아갈 수 없어 선이  꺾어졌다. 

 

 하루를 잃었다. 그래도 집에 갈 때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땅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덩어리를 보았고 적도를 지나고 날짜변경선도 지났다. 지리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배는 미국령 사모아를 떠나 피지(Fiji)로 향하고 있다.

 40시간을 가야 한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을 것 같은 바다를 사람들이 줄을 그어 나누어 갖기도 하고 그 일이 잘 안 되면 전쟁도 불사한다. 


바닷물 색이 어쩜 저리도 파랄까. 

하얀 실타래를 담갔다가 건지면 파란 실이 되어 나올 것 같다.




갑판을 세 바퀴 반 돌고 점심을 먹었다. 





이 여행의 3분의 2가 지나갔다.

이런 호강을 또 언제 해 보겠냐며 이제부터는 주는 대로 먹기로 했다. 

 저녁에 또 걷고 탁구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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