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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Oct 21. 2023

나의 노래

노래할까요 

     김광석을 참 좋아해. 쉬는 날이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콘서트 영상을 혼자 틀어 놓고는 울기도, 웃기도 해. 왜 그렇게 청승이냐고? 글쎄, 그 질문에는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어. 그래도 해명을 해보자면 그의 노래에서는 삶에 대한 애환이 모두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 사람의 삶이라는 게 항상 기쁠 수도, 고달플 수도 없는 거잖아. 김광석은 이러한 삶의 양극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 슬픔(애)과 기쁨(환) 사이를 수놓은 그의 노랫말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아. 아름다운 노래를 참 많이도 지어놓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저버렸지. 그 점이 참 아이러니해. 그런데 나는 그 아이러니함마저도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삶의 선뜩한 속성을 방증해 주는 것만 같아서 그가 더욱 좋아져 버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용한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중략)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 속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김광석, 나의 노래-



나는 어릴 적부터 ‘꼭 스스로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아빠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왔어. 아빠는 대학생이 될 무렵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 때문에 대학 공부를 마치지 못한 채 방황하기만 했던 젊은 날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어. 제 자식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거지. 그 덕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역사를 전공으로 택할 수 있었어.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좇는다는 것도 그리 순탄한 일은 아니었어.



늘 연구실에 틀어박혀 앉아 몇 백 년, 몇 천 년 전의 낡은 일들을 붙들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이 참 많았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앞에서 내가 갖고 있는 이 낡은 무기가 쓰일 수는 있는 것일까,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웠어. 하루를 꼬박 공부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어. 여벌의 시간이 날 때마다 용돈 벌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거든. 참 얄궃게도, 그 시절에는 집에도 우환이 끊이질 않았어.



어찌 저찌 석사는 마쳤지만, 결국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밟겠다는 야무진 꿈은 고단한 현실 속에 묻혀 버렸어.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은 또 다른 별천지였어. 가진 것 없던 시절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내던지며 기여코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자리가 그저 장식에 불과했어. 내 자신이 참 초라하게 여겨지는 순간들이 많았어. 그럴 때마다 난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나의 노래’로 여기며 스스로를 꼭 붙들어 매곤 했어.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중략)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 있는 걸


-김광석, 일어나-




김광석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곡이라고 해. 이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의 생을 포기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어. 일어나고자 했지만 끝끝내 일어서지 못한 그의 결말을, 어떻게 추억해야 옳은 걸까 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참 버겁게 여겨질 때면 생을 등진 사람들이 오히려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무엇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에서 의연하게 생을 놓아버린 그들이 어찌 보면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김광석, 기다려줘-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바짝 날을 세운 채 세상에 토라져 홀로 서 있는 나에게 갑자기 너라는 사람이 나타났어. 나를 바라보고 선 너에게 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어. 그 순간 너와의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는 순간에 비집고 나온 나의 진실들은 너를 수없이 놀라게 했을 거야. 가시돋힌 나의 말들을 마주한 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릴 때도 있었어. 그런데 너는 그런 나를 한없이 품어 주었어. 그럼에도 이해없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난, 눈앞에 있는데도 너의 실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곤 했어.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단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김광석, 변해가네-



나에겐 생이 늘 숙제와 같았어. 항상 고단하기만 했던 생의 여정이 널 만난 후로는 결말을 기다려 볼 만한 한 편의 드라마로 여겨지기 시작했어. 평생을 활 시위를 달아난 화살처럼 제 과녘을 찾기에만 분주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을 꿈꾸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어.


넌 나를 순간에 머물게 해 주었어. 멈춰있는 순간을 온전히 산다는 게 얼마나 충만한 기쁨인지를 일러 주었어. 이제 난 너와의 순간에 이렇게 깔깔 웃고 웃으며 살아볼 만하다 여기는 이 날들에 머물고만, 이렇게 멈춰있고만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기도 해.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이젠 멀어져 기억 속으로 묻혀

함께 나누던 우리의 많은 얘긴 가슴에 남아

이제 다시 추억의 미소만 내게 남겨 주네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

나는 너를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럼에도 이 모든 게 한바탕 꿈이 되어버릴 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문득 무서워지곤 해. 결국 이 순간들이 모여 사랑이라 이름하는 시절의 먼 기억으로만 남게 될까 봐. 결국 사람은 순간에 매여 살고 싶어하면서도 결코 그 순간만으로는 안주할 수 없는 존재인가 봐.



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없이 진행하는 시간따라

하늘 위로 구름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인생은 나 인생은 나


-김광석, 바람과 나-




그래, 앞날을 누가 알 수 있겠어. 생각이 많은 난 항상 미래를 한없는 생각으로만 채워 그려보려 하곤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앞으로는 그저 흘러가게 두어 보려고 해. 생이 순간 순간의 합이라면, 결국 그 순간 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의 너와 나일 테니까.


항상 생의 순간들을 애달픈 노래 가사에만 덧 입혀오던 나의 순간들에 문득 끼어 들어 주어서 참 고마워. 지금부터는 ‘나의 노래’가 너의 노래이고, ‘너의 노래’가 나의 노래이길. 그렇게 함께 의연히 흘러가 보자. 그렇게 슬픔(애)과 기쁨(환)을 모두 함께 흘려 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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