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6부 조우(3)
“조건은 간단하다.”
발아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에게 주어질 열 가지 기억의 냄새를 조합해, 하나의 향을 완성하라.
시간은 3분이다. 실패하면 독가스다.”
이세는 눈을 감았다.
“말해봐요.”
“첫째, 니스의 바다.
둘째, 에펠탑 근처 카페의 에스프레소.
셋째, 열대과일 두리안.
넷째, 비 내리는 뤽상부르 공원의 흙.
다섯째, 히말라야 야생 난.
여섯째, 테즈마니아의 후온 파인.
일곱째, 다마스커스의 장미.
여덟째, 프로방스의 라벤더.
아홉째, 애플망고.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의 사랑.”
쓰엉이 두 손을 모았다.
“이세,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당신의 기억은 향기로 이어져 있으니까.”
이세는 하나씩 기억을 떠올렸다.
“니스의 바다는 짙푸른 코트다쥬르의 짠 냄새…
에펠의 카페엔 신문 냄새와 에스프레소의 쓴 향…
두리안은 말라카의 여름, 루잉과 함께 먹던 독한 달콤함…
뤽상부르의 흙은 비와 함께 젖은 돌의 냄새…
히말라야의 난은 태고의 숨결….”
발아크가 비웃었다.
“그럼 후온 파인은? 네 기억에 없는 냄새일 텐데.”
이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니, 있어요. 어릴 때 부모님과 떠났던 섬…
비가 내리던 숲속에서 푸른빛을 내던 거대한 나무.
잎에서 흐르던 물이 모자 위로 떨어졌죠.
그건… 후온 파인의 냄새였어요.”
쓰엉이 숨을 죽였다.
“그 기억… 어쩌면 그게 당신의 근원이었을지도 몰라요.”
이세는 계속해서 향을 조합했다.
“장미, 라벤더, 애플망고… 마지막은 ‘아버지의 사랑’.”
발아크의 입가가 비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기억할 수 없을 걸.
너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널 버렸으니까.”
이세의 손이 떨렸다.
“아니… 기억해요. 다섯 살 생일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향,
‘프라그랑스 앙쥬’—향기천사.”
발아크가 소리쳤다.
“30초 남았다!”
이세가 눈을 감고 속삭였다.
“이건 그라스의 햇살, 파리의 새벽,
그리고 아버지의 손 냄새가 섞인 향기야.”
순간, 방 안이 은은한 향으로 가득 찼다.
오렌지와 베르가못, 두리안, 애플망고의 시트러스 향이 상큼하게 피어올랐고,
백합과 라벤더, 장미가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엔 후온 파인의 깊은 숲 향이 깔렸다.
발아크는 눈을 크게 뜨며 뒷걸음질쳤다.
“이건… 불가능해…”
이세가 미소 지었다.
“향은 기억의 언어예요.
그리고 기억은, 사랑으로 완성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