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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H Feb 20. 2021

클럽하우스

아웃사이더의 운수 좋은 날


오늘은 정말 되는 것이 하나 없는 하루다.

여행 후 너무 게을러진 내 모습을 반성하며 어제 자기 전에 오늘의 계획을 빠듯한 스케줄로 짜두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요즘 중독되어 있는 클럽하우스 어플을 자연스레 켜버렸다.

귀에 에어팟을 꽂은 상태로 남편에게 요거트를 만들어 주고 출근 인사를 한 후,

부엌 한켠에 앉아 방을 만들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미국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꽤나 재밌는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모르는 친구들을 연결시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미술. 디자인에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새벽시간이라 한국 친구들은 굿나잇 인사와 함께 사라졌고,

미국의 친구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 나는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택스 절감에 대한 내용을 나누던 방이었는데,

내가 질문할 타이밍에 moderator들이 나갔고 결국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이 어플에만 들어가면 왜 이렇게 벙어리가 되는 건지.

아무튼 그곳에서 뭔가 시원스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여 아침 내내 기분이 안 좋았고,

정말 오랜만에 세탁기를 켰다. 평소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기도 하고 안 좋은 기분을 리프레쉬할 방법으로 빨래를 선택했다.

한 3분간 soaking 하는 시간이 지나고 wash 부분에서 갑자기 세탁기가 멈췄다.

청바지가 무거워서 멈췄을 거란 생각에 청바지 2개를 꺼내어 욕조에 던졌다.

하, 여전히 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좀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보려 했는데 시작부터 잘 풀리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화장실로 향했고, 세면대로 갔다.

청바지를 욕조에서 꺼내 세면대로 옮겼고 청바지에 젖어있는 세제를 빼내기 위해 물을 틀어 놓았다.

정신을 잠시 놓은 사이.

이내 곧 세면대 위로 가득 찬 물이 넘쳐 흘렀다.

나 대신 네가 울어주는구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키친타월을 꺼내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미국은 한국과 다른 화장실 구조로 욕조 바깥으로 배수구가 없기에 물이 흐르면 무조건 닦아내야 한다.

발매트까지 젖어 발매트를 욕조에 던져버렸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미국에 사는 걸 싫어하는 나에게 이 집이 나에게 시위를 하는 듯했다.

마치 ‘우리도 너 싫어’하는 듯이.

이 집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점심도 거르고 친구가 전해준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글을 쓴다.


미국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많이 외로운가 보다.

'클럽하우스'라는 어플을 접하고 난 후부터 '미국 거주자'방에 찾아 들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음성을 들으며 아,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많구나 언젠간 나도 저들처럼 헤쳐나가겠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 speaker로 참여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우울함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얻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것처럼 몇몇의 방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기도 자신감 결핍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는다.(아직까지는 상처를 받은 적은 없기에)


요즘 너무 자주 찾게 되는 SNS.. 클럽하우스

세상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나를 웃게 하기도 슬프게 하기도 하는 새로운 소통창구.

인싸들의 어플이라는데 이 안에서도 나 같은 아싸는 존재하는 것 같다.

인싸 어플을 사용하는 아싸라.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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