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에도 우리 부부는 10년간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며 살았다. 하지만, 여전히 취직은 꼭 필요할 때 잠깐씩만 했다. 맨몸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맨몸으로 돌아오고, 빚을 내어 사업을 했다. 뉴질랜드로, 필리핀으로, 제주로, 호주로 떠돌았다. 아내와 남편, 부모라는 역할에 충실 하면서,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계속 고민했다.
안정적인 길이 아니었기에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했다. 다 때려치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부부는 한 팀이 되어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지금 우리는 20년전 찌질했던 나와 남편이 어렴풋이 꿈꾸던 미래에 살고 있다. 사랑스런 두 아들. 편안한 집과 자동차. 탄탄한 사업체와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고 있고,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진지하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부자 마인드를 가르쳐 준 롤모델도 없고 변변한 학벌이나 스펙도 없고, 불타는 열정과 성실함도 없는 나와 남편이 이루어냈다고 하기엔 놀라운 성취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참거나 뒤로 미루거나 희생한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불안하고 궁핍했던 시절에도 우리는 시간을 내 맘대로 쓰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일을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고, 하기 싫은 일은 신속하게 잘라내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일 하느라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나 참여 수업에조차 웬만하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 저녁엔 늘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려 노력했다.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 여행도 다녔고, 아무리 사는게 팍팍해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삶의 비밀도 알게 됐다. 인생은 애쓰는 자가 아니라 즐기는 자의 편이라는 사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 뒤에는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한 신의 큰 그림이 숨어있다는 사실. 따라서 내 앞에 놓인 실패와 고통에 심각하게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브런치북 2~3권 목차 예고.
30대
아내는 레즈비언
클럽 지스팟 (세상의 모든 변태들)
뚱뚱해진 나를 여전히 사랑하나요?
이혼대신 이민 (뉴질랜드로 떠나다.)
불법취업의 세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가난이 빚은 참사)
영주권 플렉스
1500만원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다.
세부 이민 vs 제주 이민
이불 빨기 싫어서, 임대업자가 되다.
국내 최초 한달살기집, 원조 논란
40대
행복은, 다 내려놓고 잡초를 뽑는 것
기적. 단독주택 8채를 짓다.
타운하우스 32채를 짓다.
소송하지 않고 당하기만 한 이유.
나, 글로벌 기업 대표이사
스물 두 번째 이삿짐을 꾸리며
프라하에서 갈 곳을 잃다.
코로나가 선물한 금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