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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17. 2020

"엄마, 나 나쁜 일 하는 거 아니야."

"너.... 뭐야... 그... 오르가* 찾기… 뭐 그런 거 하냐?"


엄마는 소파를 두고 꼭 방바닥에 앉는다. 나도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손톱으로 장판을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응"

".......휴우.......”

"근데 어떻게 알았어?"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쉬던 엄마는 벌게진 얼굴로 내가 지하철 6호선 역촌역 화장실에 붙여둔 주황색 스티커를 방바닥에 툭 던지셨다.


대한 여성 오르가슴 찾기 운동본부

foxylove.net


오선생 찾기 운동본부라고 썼어야 하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스티커를 제작한 내 실수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빠도 엄마도 일가친척들도 다 알게 될 일이었다. 이미 각종 신문,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잔치 때마다 관광버스를 빌려서 몰려다니는 12남매 외가댁 식구 중 누군가는 곧 엄마에게 연락을 해 올 것이었다.


"근데 엄마 나 나쁜 짓 하는 건 아니야. 홍보하려고 말을 좀 자극적으로 썼지만 일종의 인터넷 여성신문 같은 거야."


모르긴 몰라도 엄마는 딸이 포르노 사이트라도 운영하는 건 아닌가 오해했었나 보다. 웬만하면 내가 하는 일에 간섭을 안 하시는 양반이 남사스러운 단어를 입에 올려가며 딸을 질책할 작정을 하신 걸 보면.


일종의 인터넷 여성신문이라는 말에 엄마의 얼굴에 안도의 물결이 밀려왔다. 매춘업이나 포르노 업은 아니구나. 그럼 됐다. 하고 안심하신 눈치였다. 한 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셨을 텐데, 엄마는 시시하게 대화를 철수했다.


"나는 우리 딸을 믿어"


뭘 어떻게 믿으신다는 건가. 이러다 또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크게 실망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인터넷 여성신문이라고 대강 둘러댄 말 앞에 놓인 수식어 <일종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을 위한 매체이지만 섹스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성스럽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쾌락으로서의 섹스, 다양한 성 정체성과 해괴망측한 취향 등에 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르노는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에 못지 않게 야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엄마 친구들이 알게 되면, 엄청 민망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예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까마득했다. 엄마와 한 번도 섹스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엄마도 나도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를 뜰 구실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구실은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야'였고, 엄마의 구실은 '나는 딸을 믿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돼서 다행이었다.


꽤 괜찮은 스펙의 남자들과 줄곧 연애를 해오던 딸이 결국 맨날 추리닝을 입고 다니는 놈팽이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말씀하셨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사는 게 좋지."


조신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천방지축 제 멋대로 사는 딸이기에, 반듯한 집안의 반듯한 청년을 만나면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엄마는 스스로를 다독였을것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변변한 직업이 없다는게 좀 거슬리긴 하지만 이야기를 해 볼수록 순진한 구석이 있는 이서방이라면 딸이 기죽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으셨다. 그런거 저런거를 떠나서 명함에 오르가슴 찾기 운동본부라고 찍어 돌아다니는 딸을 아내로 맞을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딸을 며느리로 살갑게 맞아줄 시댁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시부모님들 역시 며느리에 대해 큰 기대가 없으셨다. 기타를 매고 추리닝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아들을 누구라도 데려가 준다면 환영! 이런 분위기였달까?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는 양가 분위기 탓에 우리는 일사천리로 날을 잡았다. 그리고 결혼 전 시부모님이 빌려주신 자금으로 홍대에 가게를 얻어 팍시러브의 오프라인 버전인 클럽 지스팟을 개업했다.


지스팟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부제가 '대한민국 1호 공식 음란 바'라는 사실을 아셨다면, 어르신들이 선뜻 돈을 빌려주셨을까? 빌려주셨을 것이다. 우리 양가 부모님은 이자만 꼬박꼬박 나온다면 자식이 하는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실용적인 분들이다.


시아버님은 한때 영어 선생님도 하셨고 복지관에서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는 등 학구적인 면모가 있는 분이었다. 하지만, 사고만큼은 유연하고 시대를 앞서 나가셨다. 훗날 며느리의 얼굴이 대문짝 만하게 실린 기사를 읽으시고, 자식 내외가 하는 일이 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을 때에도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성 생활이라는 게 인간의 본성이고, 정말 중요한 거야. 너희들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언젠가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 총수가 어머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방송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 일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고3 때도 도시락을 싸 준 적이 없고, 아들이 남의 집 창을 깨도 혼내지 않고 다만 '네가 갚으라'며 청구서를 쥐어주셨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들에게 나가서 피우라고 실랑이를 하다가 끝내 말을 듣지 않자 뺨을 한 대 때리며 "그래. 펴라, 자식아" 하고 나가버리셨다고 한다. 배낭여행을 하고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가족이 모두 이사를 갔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부모님을 떠올렸다.  


훌륭한 부모가 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딸을 공동묘지로 데리고 가 담력훈련을 시켰다던 박세리 선수 부모님 같은 분들도 있고, 김어준 엄마나 우리 엄마처럼 방임 수준의 자유를 선물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라도 자식이 하는 일이라면 전폭적인 지지와 이해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우리 시아버지 같은 부모님도 있다.


그렇게 막 키워주신 덕분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이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다 자부할 수 있다. 믿고 내버려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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