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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03. 2020

대한 여성 오선생 찾기 운동본부

"남자 친구와의 잠자리가 전혀 좋은 지 모르겠어요. 너무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오선생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문제가 뭘까요? 이런 고민이 들 때마다 내가 너무 밝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20대 중반 미혼여성이 팍시러브 게시판에 이런 류의 글을 남기면 댓글의 반응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댓글1. ‘남자 친구가 부실하군요. 사랑만큼 속궁합도 중요하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세요.’ - 대개, 잡지나 로맨스 소설을 많이 본 여성들의 반응이다. 정작 본인도 오선생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댓글2. ‘남자 친구가 부실하군요. 헤어지고 저 한번 만나보시는 거 어때요?’ - 파트너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한 남성. 하지만 이렇게 성의없는 멘트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없는 부류.


댓글3. ‘먼저 혼자의 힘으로 오선생을 만나보세요. 그 방법을 알아낸 후 적절한 방법으로 남자친구에게 알려주세요.’ - 팍시러브가 지향하는 독립적인 여성.


댓글4. ‘**년아, 이리와. 내가 해 줄께.’ - 익명의 힘을 빌어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남자들. 보통 현실에서 연애의 기회가 없거나, 막상 여자 앞에선 말 한마디 못 하는 부류가 많다. 가끔 이유 없이 분노에 찬 여성이 남성을 가장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렵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놨다가 실망하고 상처 받아 사이트를 떠나는 여성들도 있고, 댓글을 삭제하고 강퇴시켜 달라는 원성의 목소리도 늘 있어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데는 늘 고민이 따른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할 것인가? 욕설, 인신공격, 비방, 주제에 맞지 않는 논쟁 등을 가차 없이 정리하여 평화롭고 맑고 깨끗한 인터넷 문화를 가꿀 것인가? 인신공격의 기준은 어디에 둘 것인가?


요즘은 온라인과 실제 사회를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생활이 인터넷과 밀접해지다보니 악플이 개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영향을 받아 대인 기피증에 걸리거나 실제 자살에 이르는 일도 있다. 피해사례가 많아지면서 악플도 범죄로 처벌을 받는 시대다.


20년 전, 팍시러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악플러가 요즘처럼 많지는 않았다. 일단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사이트에 접속을 하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보다 진중하게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익명의 그늘에 숨어 인신공격적이고 저급한 글을 써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유저들의 냉담한 반응 탓에 길게 활동을 지속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자정작용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통하는 시대였다.


그래도 어쨌든 여성들이 은밀한 자신의 속내와 경험을 터 놓는 공간이니 만큼, 불편한 댓글은 바로 삭제 조치하라고 건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녀 간에 주기적으로 격한 논쟁이나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게시판 운영 규칙을 정하고 삭제를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고집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자들이 스스로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싫었다. 어떤 남자가 '나랑 한 번 자자'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받았다면,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웃으며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여유를 가졌으면 했다. (그 시절엔 이모티콘이 없어서, 타자기로 이런 수고를 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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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형 이모티콘] 뻑큐, 가운데손가락 2|작성자 소소하고있네


이 세상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참 허접한 남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를 바랬다. 꽃 사진을 배경으로 시나 올려대며 어떻게 한 번 환심을 사서 하룻밤 같이 자볼까? 하는 남자들이나 '나랑 한 번 자자' 하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남자들이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기 바랬다. 어차피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면 피하고 못 본척하는 대신, 맷집을 키우고 사람에 대한 안목을 키우면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이 욱해서 시작한 사이트이니만치, 일종의 실험 정신도 있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목적의 사람들이 모여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익명에 의존할 수 있을 때 이 판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궁금했다.


70년대생인 내 세대의 한국 사람들은 섹스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부부관계' 또는 '성관계'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아름다운, 고귀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 말하기 쑥스러워한다고 해서 실제 행동도 수줍으란 법은 없다. 누구나 저 깊숙한 곳 어딘가에 야하고 자유로운 정신, '끼'를 품고 살아간다. 숨어있는 욕망과 끼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신뢰와 편안함을 주는 파트너야 말로 진정한 애인이자 배우자라 할 수 있다.


팍시러브의 역할은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신뢰와 편안함을 주는 파트너처럼 마음속의 금기를 없애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게 하는 곳. 결국 기대와는 달리 사이트가 과장된 야설과 욕설만 난무하는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다면, 혹은 원나잇 스탠드 파트너를 구하는 작업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한숨을 쉬며 조용히 폐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결과에 연연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사이트를 만든 취지라는 게 있으니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맘에 안 드는 글을 삭제하고, 회원을 강퇴시키는 대신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내 평생 그때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나싶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성심리학, 여성학 등 관련 분야를 공부한 전문가도 아닌 상황에서 허접하지 않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해외 자료를 찾아보고 흥미롭게 가공하는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2의 구성애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바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자제했다. 대신 오선생을 만나기 위한 자기 훈련법, 남자 친구 또는 남편과 정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야하게 소통하는 법, 다양한 성적 취향에 관한 소개, 해외의 성문화, 섹스토이 소개 등... 여성들의 삶의 지평을 넓혀주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고 글을 써댔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엄청난 양의 영어 독해와 글쓰기 훈련을 했던 것 같다.


밤낮으로 콘텐츠 제작에 매달리다 보니 팍시러브는 자연스럽게 직업이 되어버렸다.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비즈니스 감각과 경영지식이 있었다면 투자자를 모았어야 하는데, 나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간섭받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자영업자 수준에 머물렀다. 고작 한다는 생각이 사이트를 유료화하는 것이었다. 닷컴 회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라 사이트를 돈 내고 보게 하겠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던 때였다.


나는 1,200원의 가입비를 부과했다. 밤새 고생하는 내 인건비는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안 받으려면 광고를 붙이는 수밖에 없었는데, 의뢰가 들어오는 것은 성인 폰팅 광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게 있었다), 온라인 도박사이트 광고, 비뇨기과 음경 확대술 광고 뿐이었다. 정치적 소신에 반하는 광고를 올릴 수는 없고, 먹고는 살아야하니 회비라도 받아야했다.


대한 오선생 찾기 운동본부에 대한 궁금증은 1,200원의 가치를 넘어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냈다. 그리고, 사이트는 금세 유명해졌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포츠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연락이 왔지만, 여성잡지를 거쳐 여성신문,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 성향의 매체에서도 나와 팍시러브에 대한 소개 기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신문을 보지 않던 우리 엄마는 지하철 역촌역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팍시러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한참 열정이 넘치던 때, 내가 '대한 여성 오르가슴 찾기 운동본부, 팍시러브넷'이라고 제작해서 화장실마다 붙이고 다닌 주황색 스티커를 엄마가 딱 발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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