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꽃이 피나요?”
지난주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이십 대 조카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단감의 고장. 감나무 과수원이 지천인 마을에 와서 아마도 그것이 문득 궁금해졌나 보다. '벼는 나무인가요?' '닭의 다리는 넷인가요?'라고 묻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피우지. 조그맣고 귀여운 꽃을” 내가 대답했다.
대개 꽃이라고 하면 화려한 것들을 떠올린다. 예쁜 꽃과 나무들을 정원이나 화단에 즐겨 심고 가꾸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기 때문이다. 등불처럼 봄을 알리는 목련, 하얀 레이스로 뒤덮은 듯한 벚꽃, 오월의 장미와 향기로운 백합 그리고 초여름의 풍성한 수국. 우리가 사랑하고 즐기는 것들은 이처럼 아름다워서 깊게 매혹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파, 무, 당근, 부추, 고추, 마늘, 오이, 자두, 포도, 그리고 단감. 우리가 즐겨 먹는 야채류와 과일들도 어김없이 각자의 꽃을 나름대로 피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탄스럽게 아름답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감꽃처럼 너무 작고 색채도 소박한 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기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식물들은 꽃을 피운다. 꽃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화과도 또한 꽃이 있다. 과육의 안쪽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을 뿐.
푸른 정맥이 비치는 맑은 피부, 불그스름한 뺨, 잘 익은 과일처럼 싱그러운 청춘의 향기, 세상을 떠받칠 듯 탄력 있고 힘찬 근육, 햇빛을 받은 작은 연못처럼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과 꿈. 청춘은 우리 인류종이 맞이하는 활짝 피어난 절정의 꽃이다.
하지만 이십 대의 우리 조카는 그렇게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세상의 식물이 모두 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꽃을 피운다. 간혹 크고 아름답게, 때로는 작고 외롭게, 이따금 행복하게, 그리고 자주 아프게.
“감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엔
이 세상에 와서 울음 없이 하루를 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을 수가 없다.”
장석남 시인의 ‘감꽃’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정원을 가꿀 때 주의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식물이 꽃을 피웠을 때는 거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창 꽃피는 식물에게 거름을 주면 오히려 시들거나 자칫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갖 스트레스를 극복해 내며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프로젝트에 힘겨워하고 있는데 새로운 과제를 그것도 퇴근 무렵 휙 던져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처럼 꽃을 피운다는 것은 모든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힘든 일이기에 청춘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프다.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사랑은 왜 이리도 외롭고 지독한지. 꽃대를 피워 올리는 청춘은 그렇게 울음 없이 하루를 다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감꽃처럼 피었다 지는 것이 또한 우리들 삶이기 때문이리라.
파꽃이나 무꽃처럼 잘 알려지지도, 화려하거나 장엄하지 않은 꽃. 그런 꽃도 꽃이다. 뜨겁고도 정열적인 사랑이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작은 꽃 하나쯤은 피었다 진다.
크고 화려하고 붉게 핀 적 없다고, 너무 작아서 언제 피었는지 기억조차 없다고 슬퍼하거나 실망하거나 또는 자조하지는 말자. 비록 작고 빈약하게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단감처럼 크고 달콤한 결실을 맺는 꽃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미국 백악관에 걸려 있는 미술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다. 1860년에 태어나서 1961에 돌아가셨다. 10남매를 낳고 그중 다섯을 잃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화가가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평생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히키코모리였다.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되는 여성. 바로 에밀리 디킨슨이다. 그녀는 2,000편이 넘는 시를 썼지만 사후에 여동생이 찾아내서 시집으로 발간한 이후에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무가치하다고 함부로 폄하하지 말자. 파도 무도 꽃을 피우듯 당신에게도 꽃은 피어난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씨앗은 보잘것없는 꽃도 있고 작고 초라하지만 종내 크고 탐스러운 과일을 이루는 꽃도 있다.
단감도 꽃이 피느냐고 물었던 파릇한 조카가 늦은 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을 뚫고 캄캄한 현관에 들어서서 거실의 불을 켰을 때 혼자 오래 기다렸던 고양이가 살며시 다가와 다리에 온몸을 비빌 것이다.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그녀는 언제쯤 알게 될까? 자신이 바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라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제쯤 환하게 그걸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