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갑자기 두리번거리던 아내는 “뽀옹”하며 가죽피리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날 보고 “아니 왜 방귀를 끼고 난리야.” 한다. 덤탱이를 쓰고 객쩍게 웃던 나는 질세라 “뿌아앙” 하고 맞받아친 후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가 나지?” 조용한 아침 공원이 우리의 아웅다웅으로 소란해졌다.
사람의 몸은 악기다. 못 믿겠다면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의 ‘걱정 말고, 행복하세요.(Don't Worry, Be Happy)’를 들어보라.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가슴을 두드리며 드럼을 연주하고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고 휘파람으로 피리 소리를 낸다. 악기 하나 없이 순전히 자신의 몸으로만 연주해 낸 음악이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는 그뿐만이 아니다. 손가락 튕기기(finger snapping), 손가락 뼈마디 꺾기로도 타악기 소리가 나고 갈비뼈를 훑으면 '빨래판 악기(워시보드)‘가 된다. 아, 물론 살이 찐 사람은 불가능하다.
입을 벌린 채 뺨을 두드리면 목탁소리, 입술을 오므렸다가 밀어내면 "뾱뾱"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빨을 부딪히는 소리, 손바닥을 모으고 바람을 이용하면 개구리 소리가 나고 그 사이로 바람을 불면 뻐꾸기 소리가 난다.
혓바닥에서도 소리가 난다. 혀를 입천장에 문어 빨판처럼 붙였다가 떼면 ’딱‘하는 소리, 안마를 할 때 손바닥을 둥글게 오므리고 몸을 두드리면 맑은 타악기 소리, 겨드랑이에 손바닥을 끼우고 팔로 눌러주면 "뿍뿍"거리는 소리가 난다.
귀에서도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습관인 듯 내는 직장동료가 있는데 새끼손가락을 귀에 넣었다가 튕기듯 빼내면 마치 코르크 마개가 빠지듯 "뽁"하는 맑은 소리가 난다. 학창 시절에 즐겨하던 놀이가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 물갈퀴 살에 다른 집게손가락을 살짝 얹고 그 위에 턱을 괴고서는 끼웠던 집게손가락을 튕기면 "뽁"하는 소리가 난다. 그 밖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소리가 더 있을 것이다. 아, 하나가 빠졌다. 방귀소리.
황동으로 번쩍거리는 악기 색소폰이 목관악기로 분류된다고 아침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온통 금속으로 이뤄진 악기가 왜 목관악기로 분류된다는 것일까? 이유는 소리를 일으키는 특정 부위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라고 한다.
색소폰을 불 때 입술이 닿는 '마우스피스'에 '리가처'라 불리는 고정장치로 얇은 것을 하나 덧붙이는데 이것을 '리드(reed)'라고 한다. 리드는 ‘아룬도 도낙스’라는 갈대를 이용해서 주로 만드는데 입으로 부는 바람결에 이 부위가 떨리면서 소리가 나게 되는 것이다. 리드는 두께나 모양 등에 따라 음색이나 음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성대쯤 될 것이다.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리드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목관으로 분류된다는 얘기이리라. 영국계 유대인,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세계 각지에 살고 있어도 태생으로 분류되는 유대인들처럼 금속재질의 색소폰이지만 조그마한, 그렇지만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나무조각 하나 때문에 목관악기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주앙 지우베르투와 함께 연주한 스탄 게츠의 보사노바 음반은 명반으로 손꼽힌다. 부드러우면서도 간드러지고 우아하면서 섹시한 음색을 지닌 스탄 게츠의 색소폰 연주가 압권이다. 스탄 게츠는 세계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는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뮤지션이자, 사상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중 하나이며, 한계가 없는 재즈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조차도 그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소폰 음색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리결의 부드러움과 달리 스탄 게츠의 성정은 거칠고 자존심이 강해서 주변과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물결, 바람결, 숨결, 소리결, 마음결에서 두루 쓰이는 ‘결’은 성품을 뜻한다. 물의 기질, 바람의 성질, 소리의 바탕, 숨의 상태, 마음의 성품.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이나 사물들은 결을 지니고 있다. 곱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것에 빗대어 비단결 같다고 얘기를 한다.
사람이 지니는 소리결이나 피부결이 아무리 비단 같이 부드러워도 마음결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마음결이 좋은 사람은 외형의 결이 거칠어도 부드럽게 와닿는 반면,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쉬 질리고 미워지기도 한다. 다들 자신의 결은 생각지 않고 타인의 결은 이러니 저러니 하며 따지는 경향을 가진다. 물론 나도 그렇다.
리드가 있는 목관악기로는 색소폰, 클라리넷, 바순, 오보에가 있다고 한다. 특히, 오보에 연주자 즉, 오보이스트는 리드를 본인이 직접 만드는데, 연주하는 시간보다 리드를 깎고 다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도 한다. 어떤 전문 오보이스트는 ‘내가 목수인가’하는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리드가 만들어 내는 소리의 결이 음색을 크게 좌우하므로 부단히 리드를 연마하고 다듬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결이 부드러운 소리,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연을 망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결은 색소폰이나 오보에의 '리드'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보에 연주자처럼 세심히 살피고 가다듬지 않으면 거칠어지고 무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닌가 한다. 성격은 타고나지만 마음결은 자신의 부단한 돌봄과 성찰에 의해 보다 고양되고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리라.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물질의 획득이 지고의 선이 되고 자존과 정체성이 된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결을 깎고 다듬는 사람은 드물고도 귀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그나마 살아갈 만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우리는 모두 악기다. 목소리와 몸의 두드림이라는 물성의 악기가 아니라 삶을 연주하는 존재의 악기 말이다. 신은 우리를 불어주고 우리는 각자의 음색을 들려준다. 때로 자연은 고통의 키를 누르기도 하고 우주 만물은 기쁨의 키를 열어주기도 한다. 울음과 환희, 느낌과 감정 그리고 사랑이 우리 몸에서 터져 나온다. 제 삶을 교직 해내는 소리의 원천은 바로 그 마음결이다. 마음결을 다듬는 행위는 신이나 자연이 대신해주지 못한다. 리드를 깎듯이 온전히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어떤 삶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만의 리드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고독한 오보이스트처럼.
엄마를 잃고 잠 못 드는 깊은 밤. 방 안에 홀로 누워 뒤척일 때 저 멀리 마산항에서 깊고 둔중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소리처럼 환청같이 들리곤 했다. 멀리서 울려오는 뱃고동 소리, 엄마의 긴 호명의 소리에 베갯잇을 적시며 잠드는 날들이 내 학창 시절에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인간의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그중에 제일은 엄마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다. 밥 먹으라고,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목청 높여서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길고 애절하면서 사랑 가득 비단결 같은 목소리. 삶의 질곡 속을 헤맬 때 문득 들리는 소리. 눈을 감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그리운 그 소리.
스스로 만족스럽고 누군가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을 연주해내고 싶다는 작으나 큰 소망 하나로 나는 오늘도 내 ‘리드’를 깎아본다. 언제쯤 아름다운 소리가 날까? 엄마가 내 이름을 길게 불러주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소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