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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는 제주 독서

제주 사람 속에서 제주 만나기

비오는 주일 아침 삼십분을 걸어 나가 버스를 탄다. 제주 구도심의 중심 '동문재래시장' 앞에서 내려 시장으로 들어선다. 거대한 대구의 서문시장과는 다른 느낌, 우리 동네 시장, 곧 서남시장 같은 느낌이다. 시장을 걸으며 제주 음식과 제주 사람을 만난다. 무엇이 가장 인기있는 선물인지, 먹거리인지 알 것 같다.


동문시장을 다 돌아본 뒤 제주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제주삼성혈'을 찾아 걷는다. 구도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혈은 제주의 시조가 된 세 사람, 고씨, 양씨, 부씨의 탄생 신화다. 하늘에서 내려와 신령한 땅 세 곳에서 솟아나 세 성씨를 이룬 삼성혈은 제주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다. 옛 이야기와 함께 빗소리를 들으며 오랜 고목 사이를 걷고 있으니 시간이 과거로 흐르는 듯 했다.



제주는 특별한 곳이다. 한때 탐라국(섬나라)으로 독립된 국가였지만 고려 시대 때에 합병되어 '바다 건너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의 '제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불과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주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라는 것이 있음을 쉽게 알게 되었다. '머우꽈?' '밥 먹언?' 등과 같은 줄임말과 지실(감자), 낭(나무), 오름(산) 등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 신기했다.


그리고 슬기로운 이웃생활로 집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을 통해 이웃과 언제나 소통하는 제주민의 삶을 본다. 대문에 걸쳐진 정낭은 나무 세개로 되어 있는데 한쪽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집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 나무 중 하나만 걸려 있으면 '잠시 집을 비운다'는 뜻이고, 두 개가 걸려 있으면 '외출 중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고, 세 개다 걸려 있으면 '장기간 집을 비운다'는 것을 이웃에게 알렸다. 누구나 집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환대했고, 무엇이든 나누어 먹었던 제주 사람들의 마음씀을 알 수 있다.




제주 구도심의 가로지르는 산지천을 따라 걷다보면 '산지천 갤러리'에 다다른다. <떠 있는 섬>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창의적 작품을 만난 뒤 4층 전시실에서 사진 작가 김수남(1949-2006)을 만났다. 그는 제주도 태생으로 우리나라 굿판을 넘어 아시아의 샤머니즘을 사진으로 담아 낸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말했다.


"죽음이 곧 삶의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이다.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민족은 굉장히 슬퍼하고, 새로운 인생을 믿는 사람들은 아주 즐겁게 보낸다. 그런데 그 사이에 굿이 있다. 죽음과 삶 사이의 선을 긋는 위에 무당이 있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달래고, 가는 이들을 잘 보내준다."


제주도에 아직도 만연한 굿,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인 김윤수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하는 영등신을 위해 벌이는 굿은 제주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고보면 굿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제주의 역사와 아픔을 살피지 않고서는 제주를 안다고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박노해는 말한다.


"살아있는 모든 이는 죽은 자를 딛고 서 있다." All who live walk and stand on the dead.


걷는 제주 독서를 하며 산 사람들을 만났지만 동시에 그들을 통해 죽은 사람들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나의 걷는 제주 독서'는 산 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죽은 자들을 찾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게 오랜 숙제로 남아있었던 하나의 사건이자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4.3'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실 제주도에 온 이유 중 하나는 4.3에 대한 나의 무지를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고백처럼 말했더니 소피아 자매님은 나를 바로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데리고 갔다.


살아있는 제주 사람들을 알기 위해 죽은 자들을 찾아 나선다. 이제 본격적인 '나의 걷는 제주 독서'가 시작되었다. 낮에 원당봉을 내려 오는 길에 만난 노루가 나를 보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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