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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민의 맛

'순아'에서 만난 댕유지와 쉰다리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내가 아는 유일한 두 사람이 있는데 한 분은 은퇴하신 강우일 주교님이고, 다른 한 분을 오늘 구제주시에서 만났다. 그분이 안내한 커피집 '순아(SOONA)'에 갔다. 오래된 일본 가옥을 그대로 커피집으로 사용해 작지만 아담하고 낡았지만 정취가 느껴졌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인장이 '하상바오로 신부님 아니세요?'하고 묻는다. 내가 놀라서 '어떻게 저를 아시는지요?'하고 물으니 '군위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린 적이 있다'고 하셨다. 정말 세상 좁다. 덕분에 내가 아는 제주 사람이 50%나 늘었다.



순아에서 완전히 새로운 맛을 경험했다. 먼저 더운 오후라 '사케 라떼'를 주문했다. 무슨 커피집에서 사케(청주)를 마시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이태리에서 즐겨 마시는 '흔들어 마시는 에스프레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케는 흔들다는 뜻의 쉐이크(shake)에서 나왔고, 에스프레소와 얼음을 넣고 칵테일처럼 한참을 흔들면 노란색 거품이 엄청 많이 생기는데 그것이 우유같아 라떼(latte)를 부쳤다고 한다. 더운 여름에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노란 거품 가득한 차가운 에스프레소 사케 라떼를 추천한다.


그리고 주인장이 특별히 서비스한 음료가 있었으니 '댕유지'였다. 제주에서 나는 '큰 유자'라는 뜻의 댕유지는 시고 쓴 맛이 강해 오래전부터 제수용과 약제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옛날 제주집에는 댕유지 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 추운 겨울에 달여 먹어 감기를 예방했다고 한다. 댕유지 차의 맛은 시지만 기분 좋은 떫음이고 쓰지만 깊은 쓴 맛이라 오랫동안 입안에 그 향기와 맛이 남아 있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독특한 매력의 맛이라 두 잔이나 마셨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입에 침이 고인다.)


좀 있으니 '쉰다리'라는 음료를 내 오셨다. 막걸리 같이 생겨서 '사케 말고 막걸리도 마시나요?'하고 웃었지만 맛도 막걸리와 조금 닮아 있었다. 쉰다리는 예전에 보리밥이 시면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후 끓여서 차게 마시던 제주 토속음료이다. 남은 보리밥을 버리지 않고 몸에 좋은 발효음료로 만들어 여름철에 마셨고, 약간의 취기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천연소화제로도 쓰였다.


댕유지와 쉰다리, 내 평생 처음 마셔본 이 두 음료에서 제주 서민의 맛과 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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