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알콜중독자의 고백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묻곤 한다.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여러 케이스가 있을 것이다. 나는 불면과 삶의 고통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나와 같은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매우 흔한 알콜 중독의 사유다.
1.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온다.
2. 술을 마시면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1번의 경우 의사들은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잠이 잘 올 수 있지만 수면의 질을 방해하고 자주 깨게 되어 오히려 독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면의 질의 문제가 아닌 잠에 드는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문제인 사람들에게는 술만 한 묘약이 없는 게 사실이다.
2번의 경우는 알콜중독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술은 나쁜 몰입에 해당하겠지만 나에게서, 그런 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게 해준다. 그러니 고통을 지워준다. 들뜨고 행복해진다. 술에 취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알콜중독이 시작된 것은 스물 세 살 무렵이었다. 이즈음 나는 집에서 독립해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새롭게 겪게 된 삶의 방식을 매우 힘겨워했다. 나는 당시 반지하에 살았는데, 매우 비좁고 습한 자취방에 홀로 앉아있으면 끝도없이 우울해졌고 밤에 갑자기 깨어나서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집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독립이었기에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동네, 열악한 공간에 혼자 산다는 것이 전혀 적응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살던 곳과 본가는 환승 없이 지하철을 1시간만 타고 가면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누가 보면 이민이라도 간 줄 알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나는 정말 어린 나이에 홀로 낯선 땅으로 이민을 떠난 것마냥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받으며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잊어보고자 홀로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집에서 마셔본 적도 없거니와 친구들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술자리도 별로 가지지 않았었다.
외로움과 고독에 몸부림치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어 술로 도피하고자 했고, 취하면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나는 현실의 고통을 술로 도피하는 나쁜 습관을 끊어내지 못 하고 있다.
반 년이 지나자 혼자 사는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삶의 고통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학점에 대한 집착, 트집을 잡는 상사와 진상 손님, 별 생각 없이 건네는 친구의 비수, 몇 시간 째 연락 없는 연인 등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상처만 받아도 나는 화상이라도 입은 듯 소스라치며 내가 받은 상처에 몰입하고 아파하기 바빴고 곧바로 술을 마셨다.
나중에는 괴롭지 않아도 마셨다. 슬프면 슬퍼서 마셨고 기쁘면 기뻐서 마셨다. 마셔야 할 것만 같아서 마셨다. 거의 강박처럼 어제 술을 안 마셨으면 오늘은 마셔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맥주만 마시지만 20대 중반까지는 나는 주종을 돌려가며 다양하게 마셨다. 소주는 마시지 못 하니 소맥, 청하, 막걸리, 와인, 맥주까지 다양하게 만취할 정도로 혼자서 폭음을 했다.
술자리가 있으면 물론 빠지지 않고 나갔고 필름이 끊겨 집에 돌아오곤 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전날 술자리에서 어느 시점부터 기억이 전혀 나지 않고 샤워까지 한 채로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날 발견했을 때 돋는 소름을 아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은지 삼일 째 아침이다. 삼일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다가 평일 새벽 세 시까지 마시는 미친 짓을 벌였다. 혼자 마실 때는 맥주로 끝나지만 이날은 엄청난 양의 술을, 주종을 섞어가며 마셨기에 이틀간 거의 반 죽어있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쓰러져 잠만 잤다. 이제 나도 20대 때처럼은 못 마시겠다. 이제 나도 노화가 왔다... 오늘에서야 몸이 회복된 느낌인데 회복됐다고 밤에 또다시 술을 마시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20대 때는 매일이 폭음하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어느정도 조절은 한다. 알콜중독 호전의 징조는 아니다. 적게 마시는 만큼 빈도수는 더 늘어날 때도 있고, 어쨌든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겠으니까.
사실 나는 술이 싫다. 주종에 관계없이 술은 일단 맛이 없다. 음식을 먹을 때 곁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냥 쓰고 싫다. 소주는 냄새만 맡아도 역겹고 도저히 못 마시겠다. 술은 내게 오로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적당히 마실 수가 없다. 취하지 않을 거면 마실 이유가 없으니까. 그것이 내가 한 번 마시면 폭음까지 가는 이유다. 지금도 폭음을 하지만 폭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어느정도 알딸딸해져 취한 상태까지가 될 때까지 마신다.
체질 자체도 술이 안 받는다. 술을 마시면 얼굴과 몸 군데군데가 빨개지고 구토를 하는 일도 빈번하다. 다음날 무조건 숙취에 시달린다.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에는 숙취로 너무 괴롭고 이런 내가 한심해지면서 자괴감이 몰려온다. 하루종일 컨디션은 최악이다.
피부에 염증 반응이 올라오고 피붓결이 푸석푸석해진다. 씻어도 씻은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술에서 회복된 저녁에는 어김없이 또 술 생각이 나는 것이다. 나를 나로 아니게 만들어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를 괴롭히는 삶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잠에 들고 싶어서 또다시 술에 손 댄다.
의지로 끊을 수가 없다. 아니 끊을 의지도 잘 생기지 않는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알콜중독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면 나는 언제나 만점 가까이 나온다. 노답이다. 알고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어느정도 완화된 것을 느낀다. 나도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는 것이 좋다. 숙취가 싫다.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운동을 하고 어떻게든 몸을 혹사해본다. 그런데 피곤해 미치겠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은 정말 고통스럽다. 아마 불면을 이유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콜중독자가 된 이유에는 유전 또한 작동했음이 자명하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 모두 술 문제를 겪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직장을 영위하며 살았지만 지금 생각건대 확실한 알콜중독자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매일 밤 집에 취해서 돌아왔다. 그러니 내게 알콜에 취약한 유전자와 알콜중독이 유발될 만한 불행한 유년기를 물려준 두 사람에게 책임의 반을 돌리겠다.
사실 팔할이 부모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성인이기에 내게 반의 책임을 지운다.
나는 술을 마시면 행복해하거나, 불행해한다. 두 가지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모두 나의 욕망을 자극한다. 전자는 들뜨고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 지속된다면 후자는 너무 불행해서 운다.
후자는 내가 가장 진상이라고 생각하고 남에게 들키기 싫은 모습이다. 혼술할 때 나의 버릇 중 하나는 정말 미친듯이 우는 것이다. 불행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슬픈 장면들을 돌려보면서 미친듯이 운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 어디서 이 많은 눈물을 모아두고 있었을까. 덕분에 다음날 얼굴과 눈이 심하게 붓곤 한다.
혼자 집에서 술에 취한 채 엉엉 우는 성인이라니. 정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 습관은 내게 큰 해방감을 가져다 준다. 평소에 맨정신으론 울 일도 없거니와 울더라도 오열하는 일은 없기에 술에 취해 마음껏 우는 것이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부작용은 두 배로 심하지만. 어쨌든 내 마음 속에 져있는 이 응어리를 풀고 싶어서, 시원하게 울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술을 마셨다.
그렇다. 변명 맞다. 사연 없는 사람 없듯이 그냥 한 알콜중독자의 고백이자 변명이다.
어쨌든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에 겪은 불행을 극복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뻗어져나온 수많은 일들, 그로 인해 형성된 삐딱하고도 불안한 자아는 내 삶을 불행하고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현실이 시궁창 같으니 스물 세살에 맛봤던 손쉬운 도피 수단에 계속해서 굴복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거지 같은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셔왔던 것이다.
나의 불면 또한 이 불행에서 비롯되었으며, 잠에 들지 못 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 또한 이 불행 때문이다. 한때는 잠에 드는 것마저 두렵게 만들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나는 지옥에 있었다.
사는 게 고단하고 지치고 외롭다. 오랫동안 화병이 지속되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하지 않으면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그 해소제가 내게 술이 된 것뿐이다.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썩어 문들어지는 것 같다. 그런 답답함이, 깊은 상처가 내게 있다. 나는 내가 겪었던 불행에 관해서 영혼에 상처를 입었다고 표현한다.
과거에 겪었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을 넘어 영혼에 흉터가 졌다고 생각했다. 그 불행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순식간에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나를 시험한다. 맨정신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어떤 불행을 다른 불행으로 대체하는 것은 그것을 잊는 일시적인 효과로는 최고다.
나의 중독은 그래서 분노와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알콜중독자들이 그럴 것이다. 정신과 마음이 병든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술 마시기를 그만둔다면 아마 다른 중독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삶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온갖 방법을 써봤다. 명상, 운동, 산책, 독서, 미라클모닝, 식습관 개선, 약물 복용, 감사 일기, 글 쓰기, 종교, 생각 바꾸기, 용서하기, 마음에 대한 명강의 듣기, 심리학 공부하기, 병원 가기, 좋은 사람들 만나기, 건강한 공동체에 들어가기 정신에 좋다는 건 다 해봤다.
어느정도 차도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렸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아프지 않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알콜중독자임을 자각하고 있고, 내 몸과 정신 건강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오늘 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고 내일의 목표는 내일 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당장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할 것이다. 그래도 해보는 것이다.
서정주는 말했다.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내가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도 나뿐이라고. 나처럼 정신이 망가진 인간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당장은 그렇게 사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 마음이 언젠가 바뀌길 원한다.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날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