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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Jun 23. 2024

탈서울 탐방 - 수원 당일치기 여행


수원 여행 : 24.06.07


아직 대기업 파견직으로 근무하던 때, 연차를 내고 수원에 다녀왔다. 수원이라는 지역은 유명하고 익숙하지만 20대 초반에 한 번 가본 것이 전부다. 유명하다는 수원통닭을 먹으러 갔었는데, 그냥 평범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당시는 여행은 아니었고 그냥 통닭만 먹으러 갑자기 갔던 듯하다. 


그래서 제대로 수원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원 화성을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려 했으나 걸리는 시간을 가늠해보니 너무 오래걸렸기 때문에 무궁화호를 선택했다. 용산역에서 30분이면 수원역에 도착한다. 편도 2,700원이었나. 기차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말버릇 중 하나는 '너무 멀어'다. 현재 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는데, 이동 시간이 30분이 넘어가면 너무 멀어서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식으로 벌벌 떨곤 한다. 왕복 통근 시간이 기본 2시간인 경기도 사람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이다. 


작년부터 불현듯 깨달았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다는 사실을. 작년 여름방학 때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각하기 시작했고 올해 세 번째로 옮기게 된 회사까지, 거의 항상 내가 회사와 집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웠다. 


직주근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었다. 내 통근 시간은 매번 거의 1티어였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나, 특히 꽤나 안정적이고 알아주는 회사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30분도 힘들다... 걸리는 시간보다도 지옥철이 너무나 괴롭다. 경기도 출신으로서, 어릴 때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다가 우울증 걸릴 뻔했다. 


다들 자취를 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본가에서 통근을 한다는데 나 같으면 고시원에라도 살 것 같다. 그만큼 이동은 내게 매우 큰 스트레스다. 특히 지하철을 매우 싫어한다. 그 특유의 공기, 분위기 모든 게 싫다. 

어쨌든 기차를 타니 아주 신세계였다. 내 의지로 수원에 방문한 것은 처음인데, 수원역에 내려서 든 첫 생각은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수원이야 대도시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었기에 이곳 또한 내가 정착할 곳으로 맞지 않다는 결론을 금방 내렸다. 서울 근교 경기도에 자리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수원하면 떠오르는 것은 화성과 통닭. 그리고 삼성이다. 삼성 덕분에 서울 위성 도시 중에 서울에 일자리를 의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도시로 알고 있는데 수원을 검색해보니 서울 축소판이라고 설명하고 있더라. 팔달문 근처에 가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궁궐이 있고 그 주위로 번화가가 생성된 것이 확실히 서울과 유사했다. 수원은 서울로부터 자립도도 높고 여러 부문에서 발달한 곳이다. 인구도 100만 명이 넘고, 특례시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리자마다 나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했다. 아름답다. 역시 나는 건축파다. 서북공심돈을 시작으로 화성 중심까지 걸어갔는데, 문화재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있는지 주변 건물이 높지 않아 좋았다. 주변 상가 지붕들이 한옥으로 되어있었는데, 경주가 떠올랐다. 여기도 시에서 제한을 두거나 한옥 지붕을 만들 시 특혜 같은 것을 주는 것일까.

서북공심돈 주변은 한적한 시골 느낌이 났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서북각루를 지나 높은 곳에서 수원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름답다.

이날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관광지임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화성행궁으로 가니 역시나 관광객이 바글바글했다. 아이들도 많았다. 수원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필수로 오는 느낌이다. 

매표소에서 표와 함께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종이를 구매했다. 궁 위치마다 도장을 놔두고 찾아가 찍는 방식인데, 이런 게 있으면 못 참는다. 이러면 구경보다 도장 찍으러 다니는 데 혈안이 되어버리지.

화성행궁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했다고 한다.

도장을 모두 찍어 종이를 완성했다. 이게 뭐라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게 한다. 찾는 게 당연히 어렵지도 않았지만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팔달문 근처에 시장이 있어 구경했다. 쇼핑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없다. 시장 구경을 좋아한다.

쓸모없는데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인형들.  

팔달문 옆에 팔달사가 있어 찾아갔다. 유명한 수원 통닭 거리도 이 근처에 있다.

국내 여행을 가면 근처 사찰에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난번 의정부에서 찾아간 미륵암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더 화려하다. 스님께 합장도 하고 절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앉아 쉬었다. 

아침 일찍 나왔기에 시간은 오후 2~3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몸은 벌써 지쳐왔기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요즘 다시 체력이 떨어진 것을 느낀다. 더위 탓이 크다. 



수원을 끝으로 여름에는 더 이상 짧은 여행이라도 다니지 못할 것 같다. 더위에 쥐약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돌아다니지 못 한다. 더우면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에 더해 몸이 아파오는 느낌이다. 아직 6월이지만 벌써부터 7,8월이 두렵다. 

수원은 역시나 너무 크고, 사람이 많고 복잡하다. 서울 위성 도시들은 확실히 탈서울지 목록에서 제거했다. 서울을 떠나 정착할 지역을 정하는 데 있어 나의 조건은 이렇다.


1.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하게 늘어선 대도시가 아닐 것

2. 오지가 아닐 것. 걸어서 20분 이내에 적당한 크기의 마트, 시장 등이 있을 것

3. 인구 10만 이상으로, 어느 정도 생활 인구가 갖추어져 있을 것(인구 수는 더 적거나 많아도 허용 가능)

4. 대기의 질이 좋을 것

5. 제조업을 제외하고 여성이 근무할 만한 일자리 수요와 공급이 어느정도 있을 것(전문직 일자리거나 높은 연봉 아니어도 괜찮다) 

6. 월세 전세 등 주거비가 서울보다 저렴하고 주거 공간이 더 쾌적할 것

7.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을 것

8. 버스 배차가 너무 길지 않을 것



빡빡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막상 찾기 어려운 듯하다. 대도시 아니면 시골로 지역들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느낌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원룸이지만 물건을 다 내다버리고 깨끗하게 살다 보니 만족도가 나쁘지는 않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집의 외관이 좋지 못한 것이 흠이다. 유흥가에 위치해있는데, 생각보다 거리에서 나는 소음 문제는 심각하지 않지만 피아노 학원인지 성악 학원인지가 옆에 있어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미칠 것 같긴 하다. 

이것을 제외하면 집에서 1분 안에 갈 수 있는 편의점이 세 개 있고 식당, 마트, 시장, 다이소,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등등 모든 곳에 5분 이내 갈 수 있어 생활의 편리성은 매우 높다. 서울을 떠난다면 생활의 편리성을 어느정도 포기할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고, 문화생활 같은 것은 평소에도 관심 없기에 전무해도 상관없다. 영화관조차 없어도 괜찮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도 필요 없고 백화점도 필요 없다. 시장과 적당한  동네 큰 마트면 족하다. 쿠팡이 되면 더 좋겠지만 쿠팡도 포기할 수 있다. 


생각보다 적당한 곳을 찾기 쉽지 않고 공업 도시도 제외해야 하니,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현재 내 고민도 깊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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