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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Jun 15. 2024

일단 밖으로 나가 보자, 그런데 즐겁지가 않다


아직 6월이지만 날씨는 어느새 여름의 초입으로 들어섰다. 매년 이맘 때면 지구가 작년에 비해 얼마나 더 빨리, 많이 뜨거워지고 있는지 불안감을 조성하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온다. 더위를 매우 싫어하는 나로서는 진심으로 지구 온난화가 두렵다. 동시에 공포 마케팅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감이 강하게 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는 나의 반골 기질에 대해 고찰해보게 된다.


나는 사계절을 모두 좋아한다. 각 계절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봄을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가장 애정하는 계절은 겨울이고, 더위를 너무 힘들어하기에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미칠듯한 더위와 습도만 아니었다면 여름만의 아름다움 덕분에 여름도 좋아할 텐데.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사는 축복을 더 이상 누리게 되지 못할 것이라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정말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내가 노인이 되면 아이들에게 과거에는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이 존재했다고 알려주는 세상에서 살게 될까?


어쨌든 요즘 자전거를 자주 탄다. 서울시 공공 자전거인 따릉이를 출퇴근 길에 타고 다닌다. 20대 초반에 한참 따릉이를 타고 다니던 때가 있는데 그때와 가격이 동일하다. 1시간에 천 원. 현재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3000원만 더 내면 따릉이를 한 달 동안 타고 다닐 수 있으니 돌아오는 결제일에 따릉이 포함 금액으로 결제하려 한다.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자전거를 타기 힘드니 이때 많이 타고 다녀야 한다. 가뜩이나 전철을 싫어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지옥철에서 해방되고 너무 좋다. 서울이 아무리 교통이 잘 돼있다고 해도 전철이나 버스는 빙빙 돌아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도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철과 엇비슷하다.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럴 때면 나도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 속의 작은 기쁨이다.

요즘에는 쉬는 날이 생기면 집에만 있지 않고 최대한 돌아다니려고 노력한다. 5월 10일에는 잠실에 있는 디저트 카페에 다녀왔다. 벌써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네. 이름은 끄네들로. 프라하에서 먹은 굴뚝빵을 잊지 못해 찾아간 곳이다. 점심시간에 가게 문을 열기 때문에 맞춰서 찾아갔는데 손님들이 많았다. 그리고 자리는 굉장히 불편하다.



테이크아웃을 유도하는 가게인 듯. 그냥 자리에 앉아서 빨리 먹고 나왔다. 사실 비법이 있어 보이는 특별한 빵이 아니기에 맛은 당연히 프라하의 것과 비슷했다. 맛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추억으로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 했던가. 프라하에서 먹었던 느낌은 낼 수 없었는데 그건 맛의 문제가 아닌 공간과 기억의 문제일 것이다.


가게 바로 앞에 유명한 석촌 호수가 있다. 빵을 먹고 산책했는데 평일임에도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짬을 내 산책 나온 직장인들도 많았다.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건 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릴 때는 고층 빌딩의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에는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그려봤던 것 같다.


나도 현재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건다. 점심 시간도 여유로워서 1시간 30분을 쓸 수 있다. 회사 바로 앞에는 청계천이 있다. 하지만 나는 최저임금 받는 파견직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또 우울하더라.

석촌호수 앞 스타벅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나도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서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이 자기 회사의 인턴이 월급이 너무 적다고 하며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월급이 얼마냐는 질문에 200만원이라고 했다. 상대방은 인턴 치고 많이 주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했고, 남자는 맞장구를 치며 지가 학벌이 좋길 하냐 실력이 좋길 하냐며 월급에 불만을 품고 퇴사한 인턴을 흉보느라 바빴다.


내게 야근을 해도 추가 수당이 없는 것을 경험이라고 생각하라는 듯 말하던 팀장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1인 가구 비율이 대한민국의 35퍼센트에 육박한다는데 니들이 200만원 받고 살아봐라. 세금 떼면 180~190만원이 될 그 돈으로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식재료를 사고 생활하고 저축할 생각을 해보라고. 눈앞이 깜깜하지 않나? 태연히 말하며 낄낄거리는 남자들한테 화가 났다.

이때는 회사 생활에 현타가 가득하고 하루하루 너무 절망적으로 느껴졌을 때라서 사회초년생들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됐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재는 두달 남짓 다닌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한 상태다. 당장 돈 나올 곳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막막하면서도 후련하다. 팀장한테 그가 했던 꼰대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롱하고 욕이라도 하고 나오고 싶다. 어휴...


5월 26일에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안암에 다녀왔다. 나는 맥모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우리 집 근처에는 맥도날드가 없다.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가 안암이길래 따릉이를 타고 갔는데 경사가 있어서 생각보다 굉장히 고생했다...



축제기간이었는지 길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고 응원복장을 한 고대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학가가 꽤 낙후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우리 대학 앞보다는 낫다... 고대 앞은 가게나 건물들이 오래되어 보이긴 해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오랜만에 맥모닝을 먹었다. 나는 무조건 팬케이크도 같이 시킨다. 우리 집앞에 맥도날드가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맥모닝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는데 매장이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내 인생 이런 공용 화장실은 처음 봤다. 한가운데에 욕조가 있고 구석에 샤워부스까지 딸린 공용 화장실은 이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용도를 상상하게 했다. 스타벅스가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겠지. 원래 숙박업소였을까?


그렇게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건만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데. 가끔 내게 너 요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답하곤 했다.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술 안 마시고 어떻게 살아요~


내 능청스러운 성격 덕분에 다들 웃고 넘어가지만 사실 내 알콜 문제는 꽤나 심각하다. 나와 술을 자주 마셔본 이들은 나를 애주가 정도로 생각하지만 나는 알콜 중독자다. 칠 년째 알콜과 싸우고 있는 이야기는 다음에 써보려 한다.

어쨌거나, 얼마전에도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요즘은 휴일이 생기면 어디든 가려고 한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밖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몸을 피곤하게 해 밤에 잘 자고 싶기도 해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나의 노력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게 자극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일정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선호하지만 나는 굉장한 자극 추구형 인간이다. 카페에 가는 것, 근교 도시로 놀러나가는 것, 맛집에 방문하는 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런 일들을 할 바에는 피곤해서 빨리 집에 들어가고나 싶다.


내가 골초에 알콜중독자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내가 막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게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끔찍한 지루함을 견디게해 줄 자극이 필요하다. 이 끔찍한 지루함이란 인생이 무료하고 바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요즘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잘못되었나 생각해보곤 한다. 나는 이런 질문에 언제나 즉답했다. 내가 정해놓은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러한가. 정말 그때부터 내 인생이 잘못되었을까? 정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던지니 언제나 사고는 한 방향으로만 뻗어나갔다.


나는 생각이 많은 인간이지만 생각이 많은 것은 인생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내면을 들여다봐라,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말들은 20대 중반이 넘어가고부터 개소리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인생의 행복이 '몰입'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에너지가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 쏠릴 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기업 파견직 퇴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또다른 불안으로 가득하다. 연차를 사용해 다른 회사 면접을 보았고, 합격한 상태다. 금요일에 퇴사 후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새 회사로 출근한다. 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소기업이지만 현재 다니는 곳보다는 월급이 많다.


솔직한 말로 이번에 가게 될 회사도 금방 퇴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 급하게 일을 구했기도 했고, 올해만 세 번째로 직장을 바꾸는 것인데 중간에 쉬는 틈 없이 바로 이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왠지 같은 루트를 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번 회사는 오래 다니고 싶지만 세 번째로 옮기는 것이라 그런지 내가 인생의 덫에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루프 속에 들어와있고, 루프 자체를 끊어내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말이다.

지금 나는 좀 쉬면서 머리를 식혀야 된다는 생각이 반, 쉴 틈 없이 일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인데,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쉬고 싶지만 돈이 없어 쉬지를 못한다.


빈털털이까지는 아니지만 적금을 깨고 싶지는 않다. 통장에 얼마의 돈이라도 들어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산다. 항상 일을 하며 살아왔기에 쉬는 것도 쉽지 않다. 내 노예근성에 눈물이 나네. 성실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노예 마인드인 것이 팩트이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지금 내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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