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가장 많이 중독되어 있는 물질 세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술, 담배, 커피일 것이다. 커피는 애매하지만 술과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삶을 파괴시킬 수 있는 물질이란 것은 어린아이들도 안다.
커피도 술과 담배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미 매우 많다. 유튜브에는 술, 담배, 커피를 당장 끊으라고 호통치는 의사들이 매일같이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세 가지 모두에 중독이 되어있는 중증 노답 중독자다. 알콜 중독자면 담배를 피우지 말든가 애연가라면 술을 마시지 말든가 한 가지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다 못해 커피만이라도...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알콜 중독에,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우는 골초에, 하루에 커피 네 다섯 잔을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다. 노답 중독 삼종 세트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젊은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아직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은 알콜 중독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건강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영상을 봤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며 각종 비타민을 챙겨먹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등 그들은 건강에 집착하고 건강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술을 끊지 못 하고 있었다.
뜨끔했다. 알콜중독에 관한 정보를 접할 때마다 내 이야기와 일치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비밀을 들킨 듯 수치스럽기도 하다.
20대 때는 건강 따위는 전혀 돌보지 않았지만 올해 초 몸이 안좋아진 후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건강을 챙기게 되었다. 특히나 몇 달 전부터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당근과 양배추, 삶은 계란, 무설탕 통밀빵을 먹고 점심에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먹는다.
설탕은 전혀 넣지 않고 소금과 계란, 새우, 돼지고기, 현미밥 등 건강한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볶음밥을 먹고 저녁에는 식욕에 동요가 없는 이상 삶은 계란과 김밥 한 줄을 먹고 끝낸다. 적어도 13시간 정도의 공복은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꾸준히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
쉽진 않지만 최대한 설탕을 피하고 가공식품을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설탕 덩어리들을 독극물 취급하며 거부할 때마다 친구들은 음식에 유난 떨지 말고 술 담배나 끊으라고 조언하곤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 당장은 그게 안 되니까 그나마 건강을 위해 음식이라도 조절하는 것이다. 나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고 커피를 다섯 잔씩 마셔대는데 식단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을 매일 한다.
이미 내 건강은 망했는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겉만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담배를 두 갑씩 피우는데 아침마다 채소를 먹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밤에 술을 마시는데 13시간 동안 음식을 안 먹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이 보면 한심하고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최악으로 건강을 잃지는 않으려는 나만의 노력이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독서하는 삶을 산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이 패턴이 절주에 도움을 주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건강한 식단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다섯 시에 일어나기도 힘들거니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책도 못 읽는다. 입이 텁텁해 물만 들이키기 바쁘고 숙취와 피로가 쌓여 하루를 망쳐버린다.
그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술을 줄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술을 마시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술 마시는 시간과 양을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간단한 청소와 샤워를 마친 후 오후 일곱 시 반에서 여 덟시 경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 마시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주 4회 나가던 운동도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일곱 시 반에 시작해 아홉 시까지 술을 마신 후 잠에 들면 다음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더라도 여덟 시간을 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술을 마셨으니 잠이 오지 않을 리는 없다. 술을 많이 마시면 숙취가 생기기에 양을 줄여 맥주 네 캔만 마시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 번에 여덟 캔씩 마셔댔다. 네 캔이면 알딸딸해지는 정도로, 술에 취하는 느낌도 들면서 다음날 입이 좀 텁텁한 것과 약간의 피로 말고는 컨디션에 큰 영향을 주거나 숙취를 유발하지도 않는다.
내 주량과 다음날 스케줄을 파악해 그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심각한 숙취에 시달렸기에 적어도 하루 걸러 마시던 것이 숙취가 없으니 매일 마시는 패턴이 되었다. 술 마시는 빈도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다섯 시에 일어나면 아침에 시간이 많아지는 데다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으니 자연스레 출근 전까지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한 번에 네 다섯잔씩 마시고 당연히 담배도 훨씬 늘었다. 출근 전까지 대략 반 갑을 태운다. 술의 양을 조절하자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겨버린 것이다.
얼마전에 이를 자각하고 또 현타가 세게 밀려왔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대책없이 퍼마시지는 않는구나. 그래도 스스로 조절하고 절제하는 능력이 어느정도 생겼구나 하며 줄어든 술의 양을 보고 안심했었다.
술 마시는 빈도수는 늘었기에 총체적으로 마시는 술의 양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덤으로 미친듯한 카페인과 흡연 양의 증가만 불러왔다.
이를 애써 외면하며 건강하게 먹는다고 자위하고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안주 없이 빈 속에 술만 들이키는 패턴이 몸에 좋을 리가 없다. 건강검진을 받는 게 두렵다. 지금은 젊으니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분명히 몸에 이상이 나타날 것이다. 살이 찌고 외모에 노화가 오는 것도 두렵다.
나는 세계여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여행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술 때문이다. 유럽여행에서 술에서 얻던 도파민을 여행이라는 새로운 자극에서 얻으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세계여행을 간다면 술과 담배를 과감히 버리고 훌훌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이 중독에 얽매여 있는지 보여준다.
도파민을 다른 도파민으로 대체하려는 것 자체가 중독에 대한 나의 나약한 의지와 불안을 보여준다.
그만큼 중독은 내 삶에 너무나 깊이 침투해있고,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중독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이 중독을 벗어나면 어떤 또 다른 중독에 걸리게 될까 걱정하는 지경이다.
어제도 술을 마셨고, 그제도 술을 마셨다. 오늘도 마시게 될 것 같다. 그래도 금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식단도 유지한다. 운동도 계속 한다. 건강을 잃으면 인간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자기합리화에 가득찬, 한심한 중독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알콜중독자인 나를 욕하고 어리석다고 경멸해도 나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많은 중독자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책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정신승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오랜시간 미워하면 결국 나를 포기하게 된다. 스스로를 포기하면 정말 인생 끝나는 것이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두루 유지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이자 궁극의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을 뿐이다.
중독은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오는 질병이다. 중독자들에게는 타인을 사랑할 힘이 없다. 자신을 지독히 미워하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