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이야기 #31
사하에는 악귀(惡鬼)와 열풍(熱風)이 많아 이를 만나면 모두 죽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위로는 날아가는 새도 없고 아래로는 달리는 짐승도 없었으니, 아무리 둘러보아도 망망하여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해도 가 야 할 곳을 알 수 없었다. 오직 죽은 사람의 고골(枯骨)만이 표지가 될 뿐이었다. - 법현의 '불국기' 중에서
하안거를 끝내고 남쪽으로 내려와 숙가다국(宿呵多國)에 이르렀다. 이 나라 역시 불법이 성했는데 옛날 천제석(天帝釋)이 보살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매와 비둘기로 화현하여 쫓고 쫓기고 있었는데 보살이 자기 살을 잘라 비둘기를 살려 준 곳이 있다. 그 뒤에 석존께서 성도하시고 여러 제자들과 함께 유행(遊行)하셨을 때 “이곳은 본래 내가 살을 잘라 비둘기를 살려 준 곳이니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탑을 세우고 금ㆍ은으로 꾸몄다.
여기서 동쪽으로 5일간 가서 건타위국(揵陀衛國)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아육왕(阿育王:아소카왕)의 아들 법익(法益)이 통치하던 곳이다. 부처님께서 보살로 계셨을 때, 또한 이 나라에서 당신의 눈을 남에게 보시하셨다고 한다. 그곳에도 역시 큰 탑이 세워지고 금ㆍ은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소승을 배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7일쯤 가자 축찰시라(竺刹尸羅)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는데 축찰시라란 중국어로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보살로 계실 때 여기에서 머리를 남에게 보시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동쪽으로 이틀쯤 가면 몸을 던져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인 곳에 이르게 된다. 이 두 곳에도 큰 탑이 세워져 있었고 모두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여러 나라의 왕과 신하들은 다투어 공양을 올렸고 꽃을 뿌리고 등을 켜는 것이 계속 이어져 끊이질 않았다. 앞의 두 탑과 함께 그 지방 사람들은 이를 사대탑(四大塔)이라고 하였다.
건타위국에서 남쪽으로 나흘쯤 가자 불루사국(弗樓沙國)에 이르렀다. 옛날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를 데리고 이 나라에 유행(遊行)하실 적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마음을 계발하고자 소를 치는 목동[小兒]으로 몸을 나투어 길가에서 탑을 쌓고 있었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너는 무엇을 만들고 있느냐?”, “불탑을 만들고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매우 훌륭하구나.” 그리고 왕은 곧바로 소년이 만든 탑 위에 다시 탑을 세웠는데 높이가 40여 장이나 되었으며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무릇 경에서 본 탑묘(塔廟) 중에서 이 탑만큼 아름답게 장엄되고 위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염부제(閻浮提)의 탑은 오직 이 탑이 최상(最上)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