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
-매우 괴롭고 어려움.
고난 또한 기준이 나이다.
얼마 전 나는 벌에 쏘여 많은 고통과 어려움에 처했다. 이걸로 보면 벌은 나에게 고난을 주는 대상이다. 하지만 벌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곤충이다. 많은 일을 감당하니 가장 이로운 곤충임이 틀림없다. 그런 벌이 내겐 공포의 대상이며 경계의 대상이다. 소리만으로도 나를 쫄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고난의 대상은 반려견.
산책하는 이들을 보면 많이들 반려견과 함께 다닌다. 이 반려견이 그들에겐 소중한 대상이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많은 견주들은 견들의 변을 잘 치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심심찮게 본다. 산책 중 이 모습은 나의 마음을 언짢게 한다. 그리고 변을 잘 치운다 해도 견들이 뿜고 가는 그건 그냥 두고 보잖아. 자기들 마당에서 그런 건 싫고 남의 마당은 그래도 된다는 듯 그냥 지켜만 본다. 그걸 보는 내겐 그 또한 고난 중 하나이다. 이게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고 하지 마라 당하는 이들에겐 그러하니.
특히 잔디를 깎다 그 변을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피하고 치우면 되니. 하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순간 그 일대는 온통 그 변 냄새로 그 변 분비물로 … 실로 내겐 지뢰와도 같다.
이쁘고 소중하면 이웃들에게도 그렇게 느끼도록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지…
이렇듯 고난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고난을 통해 무얼 봐라 하시는 걸까? 를 많이 생각했다. 벌을 통해 많은 먹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반려동물을 통해 많은 소통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겐 그 먹거리보다 생사가 , 소통보다 없는 배려심이 내겐 큰 타격으로 온다.
이를 통해 나는 뭘 봐야 할까?
이리저리 널려있는 일감에서 오는 분주함이 아니라 주신 환경을 누리라 하신 건 아닌지.
육체의 움직임을 통해 주신 공기, 햇빛을 쏘이며 움츠린 몸과 마음을 펴라 하신 건 아닌지.
이렇듯 고난의 대상을 통해 그 고난만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라 하신다.
그 분을 바라보자. 그럼 알 것이다.
그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님을.
사라지는 없어지는 기적을 체험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부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추천해 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말씀이 얼마나 달고 단지를.
온전히 말씀을 통해 누리시길.
그리고 그 고난을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며 피하지만 말고 들여다보시길.
절대절대 아닙니다. 누구의 힘이 들어간 거.
혼자 사모하며 감사하며 눈물지으며 듣는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힘을 얻으시길.
말씀으로 능히 이기는 오늘이 되시길 기도하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