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보자마자
‘성별 듣자마자 둘째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브런치를 열었다.
20년도 더 되었는데 그때로 나를 데려간다 그 글이.
그런데 그게 성별뿐 일까?
남에겐 있는데 내겐 없는.
그러면 생긴다 이런 마음이
‘갖고 싶다.’
계속 이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되고 급기야 내 머리를 점령하게 된다.
어디를 가든
뭐를 보든
그리고 꿈에서도.
그래서 그러시는 게 아니실까?
내 경우는 셋째 같은 둘째를 낳은 날이었다.
한 생명은 우리와 마주하지 못했으니.
그래 그날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힘을 다했고
그래서 힘이 다한 그때.
그래서 그랬는지 그날 나는 그 말에 바로 수술을 했다.
그리곤 그런 말도, 그 이 후도 듣지 않았고 없었다.
그때는 그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서~운하다.
넷째 같은 셋째를 낳았으면 어땠을지에 대해.
이제 생각해 보니
나도 차암 승깔 있는 며느리였네
나도 차암 승질 드러운 아내였네
나도 차암 나만 아는 엄마였네
갈수록 낳고 싶어도 못 낳고
갈수록 가지고 싶지만 못 갖고
갈수록 갈수록 갈수록.
뭐가 중요한지
뭐가 소중한지
뭐가 뭐가 뭐가… 인지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알겠지
그래 살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