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인생은 마라톤과 정말 비슷하다.
초반에 체력이 된다고 페이스를 무시한 채 빠르게만 달리면 잠깐은 남들보다 앞서는 것처럼 보이기에 마치 끝까지 내가 모두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라톤도 삶도 그렇지 않다.
삶을 멀리서 돋보기로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의 마라톤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각자가 자신의 스피드와 체력에 맞추어 달리기를 하고, 승패가 갈리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있다.
모두가,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인생은 모두가 같은 속도일 수 없고, 같은 모습일 수 없다.
결국 인생은 마라톤 경기, 게임과도 같다.
참여자인 나는 다양하게 열리고 있는 여러 경기를 찾아본다. 그중 도전해보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 지원을 하고 참여를 한다. 어떠한 경기는 내가 적당히 즐기며 완주만을 목표로 뛰어볼 수도 있고, 어떠한 경기는 오랜 시간 단련하여 1등을 목표로 참여하고 1등을 도전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바라보면, 어떠한 한 경기에서 꼴등을 하거나 부상을 입어 중도탈락을 하게 되었다거나 포기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단지 그 경기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뿐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떠한 한 경기가 내 인생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다. 이는 어떠한 경기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이 훌륭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분명 그것은 그 사람의 엄청난 노력과 실력으로 얻어낸 훌륭한 업적이자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경기에만 한한다는 말이다. 경기는 매년 반복되고 무수히 많은 분야로 펼쳐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영광은 오로지 하나의 경기에 한해서만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경기에서 우승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낙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기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각자 내가 어떠한 경기에 참여할지를 정하고 도전해 보고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며 그 모든 경험과 결과물을 끌어안고 '나'라는 인생을 품어야 한다.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경기들은, 주식이라는 분야가 될 수 도 있고, 직장이라는 분야가 될 수도 있고, 대학이나 전공이 될 수도 있다. 어떠한 경기에 나가서 뛰어보지 않는 한 그 경기가 나에게 잘 맞을지, 거기에서 내가 실제로 어떠한 것을 느끼고 배우고 성과를 낼지 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경기를 관람하거나 가능하면 참여도 해보면서 나와 잘 맞는, 흥미로운 경기를 찾는 것부터가 첫 단계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잘 맞는 경기에는 두세 번 도전도 해볼 수 있는 것이고, 그 경기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 별도로 수련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그다음 스텝을 계획하게 되리 것이고 거기에 맞춰 어떠한 행동도 시도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시선과 사고를 갖게 되면 인생에 있어서 '게으른 시기'란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앞서 지금 잠시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시기 역시 새로운 경기를 참여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기, 주춤하는 시기, 준비하는 시기일 뿐인 것이다.
운동경기를 보다 보면 수많은 관중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동안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며 경기를 훌륭하게 마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경기장 밖에서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반응했을까? 그들은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집중했을 것이다. 남들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자신의 최고 성적을 경신해 내는 선수들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경기를 결정했다면, 경기장 밖에서 들리는 수많은 목소리들에 페이스를 잃지 말자.
누군가들이 하는 게으르다 혹은 답답하다 하는 목소리에 반응하지 말자. 그것은 그들의 시선일 뿐이며, 그들들의 말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더욱더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내가 결정한 대로 나는 내 속도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금 주춤한 이 시기를 게으름의 시간이라기보다는 나에게 더 잘 맞는 경기에서 더 잘 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주춤하는 시기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