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강용수
인간은 늘 부족함을 불평하고, 넘침을 지겨워한다. 궁핍과 결핍은 고통을 낳고, 안전과 과잉은 무료함을 낳는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욕구의 결핍과 과잉이며, 인생은 결국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오가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끝없는 변주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쉽게 요동친다. 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세상을 원망하고,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해답을 찾는다. 문제를 객관적인 조건 탓으로 돌리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려 노력한다. 내면의 공허함을 외부의 자극으로 채우는 대신, 자기만의 세계를 풍요롭게 가꾸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곧 무덤덤해지며, 새로운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든다. 이 끝없는 갈증 속에서 현명한 사람은 쾌락을 찾기보다 먼저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행복이란 쾌락을 쫓아 얻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가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교육을 통해 성공과 부를 보장받으려 하지만,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자신이 가진 장점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오랜 성찰 끝에 자신에게 적합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세상을 깊이 깨달은 노인보다, 아직 삶의 무게를 덜 경험한 젊은이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건강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정이다. 마음의 평정을 위해 우리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기대와 희망이 커지고, 비교와 시기, 질투가 생기며, 결국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과의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불을 쬐는 사람이 현명한 것이지, 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화상을 입고 나서야 불이 뜨겁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이다.
독서는 남이 입던 옷을 입고,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물론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을 수도 있지만, 타인의 사고 속에 갇혀버리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형성하고 내면을 채우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인 동시에 가장 모순적인 감정이다.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다만, 사랑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우리는 한순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쌓여 추억이 된다. 사랑이 끝났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고,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차피 짧은 삶 속에서 잠시 웃고 울 뿐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줄 모른다. 그래서 외로움을 피해 관계 속으로 뛰어들지만, 결국 상처받고 다시 혼자가 된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홀로서기’와 ‘함께하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허비한다. 하지만 동물은 현재만을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사로잡혀 오늘을 살지 못한다. 가장 현명한 삶은 오직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이는 ‘무상’하다고 한탄하지만, 또 다른 이는 ‘소풍’을 끝내고 가는 길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결국 우리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이 우리 삶의 전부다.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인생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깨달은 만큼만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