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sea 8
[피노키오]
-공부하라고 책 사줬더니 책 팔고 이상한 친구랑 놀면서 나쁜 길에 빠지는 피노키오는 한심 그 자체.
-하지만 우리 모두 치어 시절에 한심하지 않았나요?
-왜 우린 양육자의 말을 안 듣는 걸까요? 그래야 마치 새끼란 게 증명이라도 된단 듯.
“이런 책이 나오는 걸 보면 인간도 우리랑 하등 다를 게 없나 봅니다.”
흰 수염고래가 등장하자 피피크랩은 옆으로 물러서며 자신이 데리고 온 폼폼크랩을 소개했다.
“오, 네가 말로만 듣던 피피크랩의 반쪽이로구나. 반갑다.”
폼폼크랩은 억지로라도 피노키오를 읽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름 재미와 교훈이 있었으며 ‘독서모임’이라는 이 시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피노키오가 고래에게 잡아먹혔을 땐 이제 끝장이구나 싶었는데 고래 뱃속에서 제페토 할아버지를 만날 줄이야... 재회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피피크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폼폼크랩이 감상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피노키오와 할아버지가 뱃속에서 빠져나오게 되잖아요. 그거 흰 수염고래님이 일부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그러신 건가요?”
“하하하. 너무 몰입했구나. 폼폼. 소설은 허구란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인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헤엄쳐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큰일 났어요, 큰 일!”
바다거북은 육지와 달리 바다에선 달리기 선수라고 할 만큼 속도가 빨랐다. 그랬기에 폼폼 크랩은 아쿠아리움움 때와는 정반대가 된 모습을 보곤 두 눈을 의심했다. 바다거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래의 꿈]을 모방한 [용왕님 가라사대]며, 오징어의 꿈에 용왕님이 매일같이 출몰한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본 대로 털어놓았다. 흰 수염고래는 의외로 침착한 모습이었다. 외려 난리난 건 크랩들이었다.
“넌 용왕님 믿어?”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
“오징어 그놈 완전 사기꾼 아냐? 꿈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겠단 거야?”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져봐야 정신을 차리지.”
크랩들이 아웅다웅하는 틈을 파고들어 바다거북이 한 마디 얹었다.
“제일 나쁜 건 흑명태예요. 우리한텐 철거하라고 저주를 써 갈기더니, 대체 정체가 뭡니까?”
“앞으로 그 얘긴 하지 마세요. 그 글은 제가 삭제했으니까.”
바다거북은 피피크랩의 말을 잘못 알아 들었단 듯 모가지를 집어넣었다 뺐다.
“게시판의 정화를 위해 삭제했다구요.”
흰 수염고래의 침묵은 암묵적인 동조를 의미했다. 바다거북은 반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긍정의 논조만 띠게 되어 [고래의 꿈]에선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을 텐데요.”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는 힐난조는 상대할 가치도 없어요. 놀이에도 규칙이 있듯, 선을 넘는 발언은 반칙이라 탈락입니다.”
‘예를 갖춰 깎듯이 반론하면 그대로 둔단 건가? 하긴 흑명태가 무례하긴 했어.’
“대왕문어님은 지금 어디쯤이실지...”
흰 수염고래의 말에 일순 모두의 낯빛이 흐려졌다. 사실 아무도 주둥이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바로 오늘이 만월로 차오르는 날이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용왕님 꿈 이야길 믿는지 모르겠지만 오징어의 말에 휩쓸리고 있는 것 같아요.”
바다거북의 말에 크랩들이 집게발을 치켜들며 응수했다.
“구세주의 존재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왕좌의 공석이 길어지고 있으니 불안한 거겠지.”
“오징어는 그 틈을 교묘히 파고들어 강림한 구세주 행세를 하려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