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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y 09. 2024

내가 사랑한, 그 모든 콩나물.

채식을 즐겁게 만들어준 당신에게.

앞서 많은 글들에서 이야기했듯 우리 집은 반찬 결정권자이자 집행자인 엄마의 취향 덕분에 주로 채식 식단을 한다. 아빠야 돼지고기를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엄마와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고기보다는 채소가 더 많이 올라오는 식단에 서서히 스며든 듯하다. 어쨌든 엄마 덕에 나는 또래 애들이 소시지와 가공햄이 달려들 때 청양고추와 우거짓국을 먹는 아이가 되었고, 육류를 먹더라도 육류만이 아닌 채소와 함께 먹는 게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를 일찍이 깨달은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내 사랑과 언제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4살, 5살 그 언저리였으려나. 아니면 그보다 더 일렀을까.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이 상대는 평생 동안 내 마음과 식습관을 사로잡으며 생애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다. 그 찬란한 이름은 바로 콩나물. 끝에 달린 콩은 담백, 고소하고 미끈하게 뻗은 본체는 아삭, 청량하니 그 조화가 완벽하도다. 차은우의 얼굴을 보며 어쩜 저렇게 눈, 코, 입, 얼굴형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저렇게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탄하는 것처럼 나는 콩나물을 보며 감탄한다. 어쩜 모든 게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졌을까. 작디작은 나물 하나일 뿐인데 말이야.


콩나물은 단지 맛뿐만 아니라 영양소 측면에서도 아주 훌륭하다. 어느 음식점에서나 '장어의 효능', '들깨의 효능'을 붙여놓는, 이왕 먹을 거면 효능 좋은 음식들로 챙겨 먹는 한국인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은 재료가 바로 콩나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간단히만 읊어봐도 면역력 향상, 숙취 해소, 피부 미용, 변비 개선, 심혈관질환과 치매 예방, 해열 작용.. 헉헉. 열량과 지방은 낮은데 비타민, 식이섬유, 무기질과 식물성 단백질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니 이만한 팔방미인이 어딨냐고요. 야채계의 차은우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덩치가 매우 왜소한 아이라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의 걱정을 샀다. 우유를 좋아했던 언니와 비교하며 키는 크려나 걱정을 샀는데, 웬걸요. 태생적으로 흰 우유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내가 챙겨 먹은 건 콩나물뿐인데, 현재 언니보다 키가 훨씬 더 컸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콩나물 덕분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콩나물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콩나물은 단독으로도, 다른 재료들과 함께해도 맛이 있다. 내가 콩나물을 특별히 높이 사는 이유가 있다면 아무리 강력한 재료가 붙더라도 콩나물은 자신의 맛과 식감, 매력을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건 웬만큼 내공이 단단한 놈이 아니라면 불가하다. 채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육류 메뉴를 이야기하긴 좀 그렇지만.. 앞서 말한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매운 낙지볶음엔? 콩나물무침이 필수다. 돼지갈비찜에도 콩나물이 붙는다. 새우, 꽃게, 아구, 고니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해물찜 역시 콩나물이 있어야 구색이 갖춰진다. 그 어떤 재료가 눈을 부라리고 있어도 콩나물은 소담한 외모와 다른 강력한 존재감으로 자신의 자리를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그 기개가 멋지고 대단하다.


나 역시 이런 화려한 메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콩나물은 단독으로 먹을 때 제일 맛있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콩나물 무침. 평생 동안 먹어왔지만 한 번도 질리는 법이 없다. 콩나물을 살짝 데친 후 깔끔하게 무칠 때는 소금, 깨, 파만 넣고 무치고 매콤하게 먹고 싶을 때는 고춧가루, 소금, 다진 마늘, 청양고추를 넣어 무치면 완성이다. 레시피라 할 것도 없을 만큼 간단하지만 먹었을 때의 맛은 그 어떤 반찬보다 강렬하다. 콩나물국도 맑게 끓이느냐, 매콤하게 끓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개인적으로 맑게 끓인 건 차갑게, 매콤하게 끓인 건 뜨거운 밥을 말아 묵은지 김치와 함께 먹는 게 최애 궁합이다. 그 외에도 콩나물밥, 콩나물찜, 콩나물 잡채, 콩나물 김치죽 등등.. 무궁무진한 메뉴들이 나를 반긴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애 궁합은 콩나물과 김치.


앞선 글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채식이 즐거워지려면 이렇게 하나 정도는 본인의 최애 채소가 있어야 수월할 것 같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채소라면 더욱 좋겠지. 누군가에게는 두부, 누군가에게는 오이, 누군가에게는 콩이 될 수도 있겠다만 내 경우엔 콩나물이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기나긴 러브레터를 써보았다. 아마 이제까지 먹은 콩나물보다 앞으로 먹게 될 콩나물의 양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되지만, 이만큼의 사랑을 쌓을 수 있도록 내게 와준 콩나물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너희들 덕분에 지금의 채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고맙고 사랑한다 얘들아. 우리 함께 오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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