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Apr 25. 2024

운동에 채식? 이게 되네?

채식이 운동 효과에 미치는 놀라운 비밀에 관해.

채식을 시도한 때보다 이른 시기에 운동을 시작했다.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어온 운동은 헬스로, 주 3회 중강도 웨이트와 유산소를 병행해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도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량은 늘리는 방향으로 노선을 잡았기에, 식단은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고 식사 시간대만 조금 앞당겼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는 식사량이 가장 많은 점심때 채소의 비중을 늘렸지만 고강도 웨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의식적으로 닭 안심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챙겨 먹어왔더랬다.


이런 습관의 기저에는 '운동 능력을 향상하려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언제 어디서 학습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명제가 있었다. 미디어에서 헬스 트레이너들이 단백질 보충을 위해 퍽퍽한 닭가슴살을 습관처럼 먹고, 중요한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이 지방이 적은 육고기를 먹는 모습을 봐와서였을까. 왠지 운동을 잘하려면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줘야 할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방식에 추호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동물성 단백질을 먹은 날과 채식의 비중이 큰 식사를 한 날의 아웃풋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때론 옥수수나 감자 같은 채소를 간식으로 먹은 날의 기량이 더 향상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운동선수나 피실험자처럼 다른 변수들을 모두 통제하고 식단만 변화를 준 게 아니기에 그저 기분 탓인가, 했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넷플릭스에서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 다큐에서는 나와 같은 질문을 한다. 정말 동물성 단백질은 운동 능력을 향상하는가? 아니면 의외로 채식 식단이? 놀랍게도 모든 지표와 케이스는 채식 식단이 운동 능력을 증가시키는 데 더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마라토너, 사이클 주자 등 날렵한 몸으로 높은 지구력을 보이는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역도 선수, UFC 선수 등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선보여야 하는 근육질의 운동선수들조차 완전한 채식을 시작한 후 성적이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중 한 선수가 말하길 "황소처럼 되기 위해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황소도 채식 동물이잖아요"라고 말하자 머리가 딩-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실이다!



영양학 관련 다큐멘터리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실험 결과 역시 놀랍다. 운동선수들에게 일부는 육고기로 된 부리또를, 일부는 콩으로 만든 비건 부리또를 준 후 피검사를 해보니 단 한 끼의 육고기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혈류에 기름이 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혈류에 기름이 끼면 우리가 익히 알듯 혈액이 순환하는 데 지장을 주게 되고, 갑자기 몸의 특정 부위에 힘을 주어 혈액을 빠르게 흐르게 해야 하는 운동선수의 경우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는 데 상당한 방해를 받게 된다. 결국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육식은 이제까지 훈련으로 쌓아온 기량을 선보이는 걸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단 한 번의 식사만으로 말이다!


나는 운동을 하는 순간마다 기록을 재야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다큐를 보며 육류 위주의 식습관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내가 홍수처럼 흘려대는 땀방울의 결실을 보기가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얼마나 원통하겠어! 몸 좋아지려고 얼마나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데! 채식만으로 우리가 필요한 단백질을 충분히, 더군다나 질적으로는 훨씬 더 향상된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면 선택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우유 등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면 나는 땀 냄새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번엔 가족 식사 때문에 족발, 장어 등 동물성 단백질로 점철된 식사를 하고 난 후 운동을 했는데,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났다. 내가 유난히 먹는 음식에 따라 체취 변화가 심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전의 식습관과 상반되어 더 대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땀 냄새를 맡기 싫어서라도 운동 전 육류는 먹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채식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채식을 시도하며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미묘한 변화를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저 다큐를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종일 근육을 키우겠다며 애꿎은 소고기와 수많은 닭의 가슴을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소를 섭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좋은 단백질로도 충분하다니, 이 얼마나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기분 좋은 발견이란 말인가. 국내의 많은 헬스 트레이너들과 운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운동은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다면 동물도 우리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여건 하나는 더 마련된 거 아닐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