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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y 02. 2024

채식 시작하는 거 이렇게 쉽다고?

아, 진짜 쉬운데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

채식을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운 건 '시작'하는 것 아닐까 싶다. 운동도 헬스장에 일단 발을 들여놓는 게 가장 어렵고, 공부나 일도 책상에 앉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듯이 채식도 그렇다. 처음에 채식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뭔가 당장 푸릇푸릇한 채소만 가득한 밥상을 대령해야 할 것 같고 갑자기 어제 안 먹었던 치킨이 생각나고 그런 것이.. 요상한 사람 마음이랍니다. 그 심적 허들을 팍! 낮춰줄 순 없겠지만 개인적 경험에 의거할 때, 아래 방법들이 저는 좀 유용하더라고요. 


먼저 채식을 하기 위해 입맛을 세팅하는 방법이 있다. 이제까지 MSG와 육고기로 조성된 우리의 입맛은 강렬하고 더욱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는 자극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1끼 정도 식사를 건너뛰어보는 걸 추천한다. 위대장내시경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신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 꽤 오랜 시간 공복을 유지하다 식사를 하면 미뢰가 리셋되어 평소에 먹던 음식도 엄청나게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이때 깨끗한 채소 위주의 식단을 시도해 보면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채소 본연의 달콤함과 상쾌한 맛을 가감 없이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그 매력이 상당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나는 혈압이 낮아서 끼니 거르는 건 절대 안 돼!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땀을 흘려보시는 걸 추천한다. 잠깐의 산책도 괜찮지만 어느 정도 땀이 맺힐 강도의 운동을 권한다. 사람의 몸은 땀을 흘리면 자연스럽게 기름지고 무거운 음식보다 가벼운 음식을 찾게 된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었을 때 쾌감에 가까운 개운함을 느끼셨을 텐데, 땀을 흘리고 마시는 민트티와 잘라먹는 오이의 아삭함은 전자를 초월한답니다. 여름에 보양식으로 육고기류 음식을 많이 추천하는데, 진정한 상쾌함과 에너지는 채식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사실! 기억해 둡시다.


입맛을 세팅했다면 이번엔 주변을 정돈할 차례다. 밥을 먹을 때건 출퇴근 심심풀이용이었건 먹는 콘텐츠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다소 거리를 두는 게 좋다. 우리는 우리가 노출되는 많은 것들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대체로 먹방에서 나오는 건 육류 메뉴가 대부분이고 이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면서 필요 이상의 식욕과 육식에 대한 갈망을 초래한다. 어차피 마음을 먹었다면 이런 콘텐츠는 멀리하는 게 좋다. 사실 애초에 우리에게 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니, 여러모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지요. 국내 말고 해외에서는 예쁘고 맛있게 비건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그걸 역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는 있겠다.


주변 환경까지 말끔하게 정리했다면 익숙했던 시선을 달리해보자. 기름과 소금을 단짝 친구로 여겨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콩으로 만든 다양한 발효장들이 있기 때문에 채식 요리를 만들기가 어렵진 않은 편이다. 하지만 사실 채식은 이런저런 시즈닝과 온갖 복잡한 요리 서사를 더하기보다는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맛을 선사한다. 비싼 음식점에서 재료의 신선함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셰프들이 백방으로 괜히 노력하는 게 아니라고요 큼큼.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기름과 소금은 완벽한 재료다.(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기름은 해바라기씨유, 올리브유 등을 이야기하는 거 아시죠?) 오이든 호박이든 당근이든 양파든 뭐든 썰어넣고 기름에 볶다가 소금만 적당히 톡톡 뿌려드셔 보라. 웬만한 요리가 따로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없어서 못 먹는 감자튀김도 그저 기름에 튀기고 소금을 뿌린 것이니, 이 레시피는 진리고 빛이다.


마지막으로 도망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놓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작가양반!! 하실 수 있겠지만 인간은 완벽함이라는 장벽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질리기가 쉬운 존재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우리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떡해요!! 그러니 완벽한 채식을 하겠다는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포기하기보다는 애초에 도망갈 구멍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 도망갈 구멍은 달걀과 약간의 치즈, 아이스크림, 호르몬 주기에 맞춰 수혈해야 하는 마라탕에 들어가는 양고기, 치킨이다. 이 음식들은 당분간 나와 같이 가고 다른 음식들의 빈도를 줄인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이 확 줄어든다. 채식을 안 한다고 누가 옆에서 목을 짤짤 흔드는 건 아니니, 너무 스스로에게 강박을 주진 말자.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잖아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풀어보았는데 이 방법들이 채식에 대한 장벽을 더욱 공고히 했을지 아니면 '오, 한번 해볼 법 한데?'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많은 것들을 시도하며 정착한 샛길이라면 샛길인데, 다른 방법들이 또 있을지도. 만일 내 주변 누군가가 채식에 흥미는 있지만 쉽사리 도전(!)할 용기가 없다면 위의 방법들을 한번 전해주고 싶긴 하다. 진짜 어렵지 않아! 한 발만 내딛으면 돼!라고 하고 싶은데.. 오히려 그게 더 어렵게 느껴지려나요. 흑흑. 진짜 쉽다고! 쉽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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