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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y 16. 2024

채식은 새로운 럭셔리가 될까.

곧 다가올 미래엔 채식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예전에 한 기사에서 농촌 지역의 소비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일수록 가공식품을 소비하는 비율이 높고, 여건상 소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게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논밭을 바로 앞에 두고 사시는 분들인데 어떻게 신선식품이 아닌 가공식품을 더 소비할까? 전말을 알고 보니, 농촌 지역은 물품 공급처인 도심으로부터 거리가 멀고 인구가 도시만큼 많지 않아 소비 규모가 작으니 동네 슈퍼나 작은 마트는 쉽게 상하지 않고 관리가 용이한 가공식품을 구비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유일한 선택지인 마트에서 공급하는 게 가공식품뿐이니 소비량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한국인의 밥상'을 보며 신선한 야채를 활용해 제철 음식을 해 드시던 분들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그건 일부 케이스였던 건가요. 약간의 배신감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농촌 지역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럼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신선식품, 즉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식재료를 풍성히 공급받고 있나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농촌의 작은 마트보다 대도심에 사는 내가 가는 마트의 규모가 훨씬 크고, 그 안의 제품 구성도 다양하겠지만 도심 역시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신선식품의 가지 수가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다. 특히 채소와 과일류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언젠가부터 한국 토종 식재료보다는 해외에서 수입된 야채들이 야채 칸을 가득 채우고, 꽤나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던 과일들도 SNS 유행에 편승한 몇 가지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높아진 가격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대파 이야기니, 양배추 가격 폭등이니 하는 게 뉴스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실제 내 지갑을 털어가는 주범이 되었다는 걸 마트에 갈 때마다 깨닫는다.


이런 변화에 영향을 준 요소는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소비자 니즈에 한정된 공급과 기후 변화다. 최근 로컬 푸드를 판매하시는 대표님의 강연을 들은 적 있는데, 농가에서 농사로 수익을 얻으려면 대형 공급업체인 마트의 구미에 맞춘 것, 즉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품종을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렇게 수급이 한쪽으로 쏠리다 보니 예전에는 다양했던 배추 종류도 현재는 속이 꽉 차고 크기가 큰 배추 몇 종만 생산된다고 한다. 서로 맞춘 듯 동시에 커지고, 더 달아지고, 씨가 없어지는 과일들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그런 걸 소비자들이 선호하니 생계가 걸린 농부들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기후 변화도 벌어지고 있는데, 극심한 기후 변화는 재배할 수 있는 채소와 과일류를 제한하고 신선식품의 가격을 올리고 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여름철 강수량이 과거 대비 100mm가 많아지면 신선식품의 물가는 최대 0.93% p 올라간다고 하는데, 올해 초강력 장마가 온다는 이야기가 벌써 흔하게 들린다. 0.93% p가 적어 보일 수 있겠다만 신선식품의 물가가 올라가면 식당에서 먹는 밥값, 오일 등의 양념 가격, 디저트 가격 등 식생활 전반의 물가가 다 올라간다. 올리브유가 금값이 된 게 이런 이유랍니다.


현실을 살펴보니 채식을 하는 건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럭셔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구슬픈 마음이 든다. 채식이 가능하려면 다양한 식재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줄어들고 가격대는 올라가니. 이러다 그나마 저렴한 채소 한 가지로 채식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끔찍하다. 예전에는 한우나 우대갈비, 양갈비를 비싼 값에 먹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올리브유가 들어간 양배추 샐러드가 그 몇 배 되는 가격을 자랑할 수도. 역설적인 건, 이 모든 상황이 결국 우리가 너무 많은 육식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만 소비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만일 적당한 때에 육고기 소비량을 조절했더라면 이렇게 극심한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일이 있었을까. 만일 맛이 조금 덜해도 적절한 활용법을 개발하고 철학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농가와 우리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지금처럼 비슷비슷한 식자재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새로운 럭셔리가 된 채식은 희소성 위에 쌓인 반짝이는 사치가 아닌, 무분별한 소비와 편향으로 벌어진 슬픈 결말이 아닐까 싶다. 그럼 그때 우리는 어떻게 채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가올 미래엔 샤브샤브에 넣는 야채 가격이 몇십만원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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