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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Mar 04. 2021

꿈속으로 달려가고 싶어라


하루 종일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 할길 없어 오전 내내 이곳저곳을 서성였다. 아무리 서성이며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 한 곳 아픈 마음을 누일 곳이 없다. 세월이 가면 모난 상처도 아픔도 무뎌진다고 그래서 인간에게 망각이 있어 다행이라고, 한 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고 아픈 것을 보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작년 7월, 나에게 구세주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하는 여러 가지 모임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장르의 노래 가사와 음악을 배달해 주며 가끔 이벤트로 사연과 함께 음악을 신청하면 읽어 주는 모임이 있다. 노래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고 싶어 참여한 모임이었다.


오늘 아침 일이었다.


"오늘은 언풍님의 사연입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는 바람에 한글을 다 배우지 못하셨대요. 어느 날 한글을 배우게 된 어머니가 또박또박 적어 온 노래가 처녀뱃사공이었답니다. 그 가사를 보며 감격에 겨워 목청껏 노래 부르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듣고 싶다며 '처녀뱃사공'을 신청하셨네요."

은은한 음악을 타고 사연이 전해지자 뒷이어 해금 소리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엄마아, 엄마아"

잠시 숨을 멈췄다가 해녀들이 물 위로 나와 숨비소리를 내뿜듯 엄마를 가슴 깊은 곳에서 토해내며 불렀다. 도대체 내가 어쩌자고 감정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사연을 보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연을 보낼 때는 담담하게 어머니와 추억을 생각하며 보냈다.


 그런데 사연과 어우러져 흘러나온 노래는 여지없이 내 감정의 둑을 '툭' 하고 허물고 말았다. 그 강물은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며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 강물에 잠겨 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싱크대 앞에서 남편 출근시키는 것도 잊고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당신, 오늘 아침 좀 이상하다. 아직 잠이 덜 깬 거야. 어제 처음 시작한 운동이 힘들었나 보네. 나 가면 좀 더 자."

사정을 모르는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그 당시 밤이면 이상하게 외출이 잦으셨다. 철이 없던 나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치맛자락 붙들며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나를 야멸차게 뿌리치지 못하고 데리고 갔을 어머니가 "나중에 데리고 갈게. 나중에" 하며 한사코 내 손을 뿌리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그때 동네 마을회관에서 하는 야학에 다니고 계셨던 것이다. 어렸을 때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배움의 길을 오빠들에게 양보했던 어머니는 늘 배움에 목말라하셨고, 그 목마름이 어머니를 야학으로 이끈 것이다.


"야야, 막내야, 너희들 모르게 한글 깨치느라 무지 힘들었다. 무식쟁이 엄마라고 할까 봐."

아무리도 못난 엄마도 그 자체로 내 어머니인 것을, 어머니는 우리가 그 사실을 행여 알까 봐 노심초사하셨던 것이다. 그 후로 어머니는 한문도 영어도 차례차례 익히며 만학도의 길을 걸으시며 배우는 즐거움에 푹 빠지셨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며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며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이하 줄임)


오늘 배달된 노래를 틀어놓고 가만히 따라 불러본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한 달 전에 읽은 소설 속에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파는 백화점이 있었다. 오늘 밤만은 그 소설 속으로 살짝 들어가 꿈을 파는 백화점으로 달려가, 어머니 만나는 꿈을 사고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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