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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Apr 06. 2021

배꽃이 피는 달밤에


봉화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넓은 배밭이 있는데 그 사이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고인돌처럼 생긴 시비가 서 있는데  오늘도 나는 그 앞을 서성인다. 다시 올 배꽃을 기다리는 것도, 달콤하게 살진 배를 기다린 것도 아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시조로 익숙하다 못해 달달 외울 지경인 이 시비 앞을 쉬이  떠나지 못한 것은 역사가 전해 주는 묵직함과 안타까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 춘심이야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에 잠 못 들어 하노라"


 배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밤, 혼란스러운 나라 사정과 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연로한 신하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 시조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이조년의 다정가다. 그는 충렬왕부터 충혜왕까지 4명의 왕을 모신 청백리로, 학자이자 관리였다. 그런데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가무와 음탕함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한 충혜왕에게 수없이 간언을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읊은 시조다. 이런 조부에게 그와 상반된 길 걷는 손자  이인임이 있었으니 역사의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인임은 명문가의 자제로 과거가 아닌 음서로 벼슬길에 올랐다. 소위 조상의 덕으로 특채가 된 셈이다. 고려 후기 국제정세는 원나라의 쇠퇴와 중원의 신흥강자로 명나라가 떠오르면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때 고려는 나라의 질서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으며,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백성들은 피폐했다.


더욱이 원나라 왕실과 인척관계로  세력을 키운 권문세족들은 산과 강을 경계로 삼을 정도로 넓은  영토를 보유했으며,  매관매직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의 중심인물이 권문세족의 좌장 역할을 했던 바로 이인임이다. 그는 공민왕 때부터 특유의 능란한 언변과 정치적 식견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승승장구했다.


"유연한 태도와 아첨한 말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

                   <고려사 열전>


최영에게  이인임이 "이성계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는 왕이 되려는 야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 실록>


그에 대한 사료를 보면 그의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공민왕이 개혁할 당시의 상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가늠케 한다.


공민왕은 어떤 인물을 내세워 개혁을 할 때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많은 정치와 관련된 인물들이 이로 인해 좌절을 겪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신돈이다. 그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인임만큼은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인임은 공민왕 사후에는 10살 된 우왕을 자신의 손으로 옹립하면서 무려 14년간 최고의 권력을 유지했다.


"하루 먼저 죽는 것보다 권력 없이 하루를 더 산 것이 두렵다."

              <정도전 드라마 대사>


 이렇게 어린 왕을 내세워 최고의 권력을 자랑했던,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냉정했다. 고려의 멸망을 앞당긴 사람, 고려 귄 문세족의 부정부패의 몸통 등으로 불린다. 일부에서는 이인임과 동시대에 살았던 이성계와 정도전  등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부각하기 위해  이인임을 간신으로 이미지화시켰으며, 고려의 역사서가 조선 초기 역사학자들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점을 들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인임이 뛰어난 정치 식견, 논의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 문무를 겸비하는 능력 있는 관리로  그 능력을 국가와 왕실, 백성보다는 자신과 권문세족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집중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가 이인임에게 묻는 죄목도 바로 그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의 뛰어난 역량과 지식을 과신한 나머지 쓸데없는 곳에 눈을 돌려 추락한 이들이 종종 볼 수 있다.


이인임은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병 치료를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측근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막후에서 권문세족의 실세로 고려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최영, 이성계 그리고 신진사대부의 반격으로 권문세족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인임 역시 우왕과 최영의 배려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도 결국 유배지에서 죽었다. 껍데기뿐이지만 고려의 마지막 귄력이 쓰러진 것이다.


역사는 그에게 고려 멸망의 모든 책임을 묻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무책임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던 이기심이 고려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능력 있는 자, 막중한 자리에 있는 자의 그릇된 판단과 실수가 국가의 조직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곱씹어 본다는 것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길 위에는 힘들었던 시간, 행복했던 순간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로 점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을 여과하고 정제하는 동안 우리는 발전하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역사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흐드러진 벚나무에서 꽃비가 내렸다. 그사이  몽실몽실한 하얀 배 꽃송이는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봉긋 웃기 시작했다. 문득 물큰한 꽃향기를 벗 삼아 가는 봄밤이 아쉬워 잠들지 못하는 멋진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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