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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l 16. 2020

똥 꿈꾸면 복권을 사는 거야

처음엔 웃던 외국인 남편이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댁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똥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똥꿈을 꿨으니 복권을 사러 가자고 자서방을 보챘다. 마침 오전에 시어머니께서 장 보러 시장에 나가신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나갔다가 복권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복권가게에서 복권을 사는데, 내가 금액을 지불하기도 전에 자서방이 냉큼 돈을 지불해 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굳이 복권 값을 주려고 했고 자서방은 자꾸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얼만데? 응? 제발 알려줘... 그거 내 돈으로 사야 된단 말이야."


"부부 사이에 누가 돈 내는 게 뭐가 중요해?"


"좋을 꿈을 꿨다고... 이거 진짜 당첨되는 꿈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더더욱 내가 돈 낼 거야. 당첨되면 너 혼자 다 가지려고 그러지? 욕심쟁이!"


"아니 당첨되면 반반씩 나눌게. 진짜 약속!"


"아니 못 믿겠어. 이미 내가 돈 낸 거고 결제는 그렇게 끝난 일이야."


아오... 속 터져.

내 꿈으로 당신이 복권을 사면 아무 효력이 없다고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 봤자 외국인 남편과 시어머니를 더 웃게 할 뿐이었다. 길고 긴 실랑이 끝에 나는 결국 10유로짜리 지폐를 자서방 셔츠 주머니에 꽂아 주었고 그게 복권 값 대신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다.


못 들은 척 그저 주머니에서 공돈이 나왔다며 좋아하던 자서방은 운전 중이신 시어머니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얘좀 봐요! 진짜 복권에 당첨될 것처럼 굴고 있어."


며칠 후 드디어 복권 추첨하는 날이 왔다.

자서방에게 숫자 맞춰봤냐고 물었더니 알 수 없는 야릇한 표정만 짓고는 자꾸 말을 돌렸다. 세 번째쯤 물어봤을 때 그제야 한다는 말이 시스템에 에러가 있는 것 같다고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간단한 말을 쪼게면서 하니까 믿음이 안 갔다.


어차피 둘이서 함께 외출하려던 참이라서 복권가게에 먼저 들러서 같이 확인하기로 했다.


복권가게에 있는 기계에 복권을 찍어보니 화면에 25유로 정도의 당첨 금액이 확인되었다.


카운터에서 현금을 받아 나오면서 나는 자서방에게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똥꿈은 확실히 1등 당첨 감이었는데 당신이 자꾸 장난쳐서 효력이 떨어졌잖아."


"사실 그 복권이 7유로짜리였는데 난 10유로를 받았으니까 이 정도면 난 만족해. 너도 만족하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

 

이런 걸로 혼자 어른스러운 척하지 마...


"한국에선 꿈에 똥이나 돼지를 보면 복권을 사거든. 나 다음에는 그런 꿈 꾸면 그냥 나 혼자 조용히 복권 사서 추첨 때까지 말 안 해줄 거다."


"그럼 다음번 꿈에는 꼭 똥 위에 뒹굴어야 해, 알았지?"


우리 자서방, 꿈에 의미가 있다는 말에는 눈곱만큼도 동의를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날 이후부터는 내가 복권을 산다고 하면 또 뭔가 당첨되려나 하고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또 그 후 어느 날에는 내가 밤중에 잠이 안 온다고 했더니 자서방이 내 머리 밑에 자기 팔을 대 주고는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의 계획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늘어놓기도 했다.


"우선 집은 서울에 한 채, 낭시에 한 채를 사고..."


그날 밤 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자서방 품에서 잠이 들었다.


당신은 계속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어 봐.

나는 언제라도 꿈속에서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뒹굴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꼭 내가 그 꿈을 실현시켜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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