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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pr 10. 2021

그저 현재를 살아내라?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 그리고 미스 사이공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창궐은 무력함을 준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은 갖지 않으니만 못하다. 나아질 거라는 생각, 희망이 더 좌절스러워지는 요즘이다.  




미스 사이공이라는 뮤지컬을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보았다. 미스 사이공은 스케일도 크고 노래도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어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줄거리를 굳이 소개한다면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여인 킴은 창녀촌에서 미군 크리스를 만나 결혼하고 꿈같은 첫날밤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미군의 철수로 둘은 헤어진다. 베트남에 홀로 남겨진 킴은 호찌민 정권에서 높은 계급이 된 전 약혼자의 집요한 청혼을 피해 방콕으로 넘어간다. 방콕에서 다시 창녀로 생활하게 된 킴은 크리스의 아들을 키우며 자신과 아들을 데리고 갈 날만을 기다리며 삶을 견디어 낸다. 미국으로 돌아간 크리스는 킴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던 중 엘렌을 만나 결혼하며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던 중 크리스는 킴과 아들의 소식을 듣게 되고, 엘렌과 함께 방콕으로 온다. 결국 킴과 크리스는 만나지만, 킴은 크리스가 결혼을 해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아들을 엘렌과 크리스에게 부탁하고 자살한다.          


참 상투적인 결말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가장 비참했던, 창녀로서 아들을 데리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을 견뎌 낸 그녀는 왜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불현듯 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소개된 일화가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을 때 어떤 수감자가 다가와서 비밀을 알려주었다. 

“의사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엇을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낮은 목소리로 해방의 날이 3월 30일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3월 30일.
그날, 수감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프랭클은 말한다. 희망의 갑작스러운 상실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현실과 괴리되어있는, 결국 잡힐 수 없는, 신기루 같은 희망은 독이다. 통제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위기가 제거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래서 선택했던 낙천적인 희망은, 결국 백일몽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을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외상 후 성장은 말 그대로 외상이라는 큰 위기에서 절망보다 오히려 성장한다는 뜻이다. 실제 다수 연구에서 위기상황에서 삶에 대한 감사, 대인관계 개선, 삶의 새로운 가능성, 가족에 대한 긍정적 태도 등등 삶의 질이 개선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도 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도 있다는 사실이다. 외상 후 성장일지, 장애일지의 갈림길은 '빅터 프랭클'에게서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줄에 서야 일을 덜할 수 있을까? 어떤 관리자를 만나야 좀 편할 수 있을까? 오늘은 어디서 자게 될까?라는 생각들,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 찬 생각을 하는 것에 지쳐서 다른 생각이 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대학교 강단 앞에서 내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해졌다”


프랭클은 억울하게 부여된 고통과 시련 조차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통과 시련으로만 채워졌던 수용소의 삶에도 희망과 의미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시련과 고통은 교수로서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수용소 강제 노역에서도 꽃과 노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수용소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로서 들어줄 수 있다. 죽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아니 죽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은 의미로와야 한다.  

    



미스 사이공에서의 킴의 희망은 남편과 아들과의 행복한 삶이었다. 그 희망으로 거친 삶을 살아냈다.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 삶을 유지할 의미가 없어졌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어’ ‘내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원하는 상황에 내가 있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혹은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 희망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안정된 직장, 전문가로서의 명성, 높은 지위와 보수, 자식의 성공, 그리고 완벽한 나 자신의 모습들.. 많은 희망들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혹은 나는 그 여정을 즐기고 있는지, 그리고 달리다 잠깐 쉬며 이 길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인지를 자문하고 있는지, 그 여정에서 흘리는 땀과 공기를 만끽하고 있는지, 그래서 삶의 생생함을 느끼고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희망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걸려있다. 미래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가 지금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미래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코로나는 인간의 무력함을 알게 했다. 그럼에도, 그러하기에 우리는 지금 현재 삶에 감사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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