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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01. 2020

소소하지만 확실한 계란 프라이의 행복

학창 시절 라디오를 듣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디제이가 말하기를

"미래시대에는 음식을 먹지 않고 알약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래요."

라고 했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맛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인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슬퍼졌다.


세상 종말이 올 것이라는 시간들을 지난 2020년인 지금 오히려 먹방이 유행하고, 사람들은 더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닌다. 음식이 주는 행복은 오히려 더 커진 듯하다. 나에게도 여전히 음식이 주는 행복은 크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매일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소울푸드는 바로 계란이다.




오늘 오랜만에 밥이 먹고 싶어서

쌀파는 곳을 겨우 찾아낸 다음 쌀을 사서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서 들고는

가을 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저녁의 공원에 가서 먹었는데

나는 그 정도 행복이면 돼요.

달걀 두 개의 값과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


이별률 '끌림' 중에서




이병률의 책에 나온 계란 프라이가 얼마나 반갑던지. 이병률은 달걀 두 개의 값과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계란 프라이는 그 이상의 행복을 준다. 반찬이 없을 때도 계란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다. 요리는 못하지만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한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동생은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일상에서의 행복을 누리기에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이지 않을까?


소울푸드인 계란을 매일 먹는 것처럼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는 루틴들이 있다. 회사에 출근하면 오전에는 커피와 카스타드 빵을 먹는다. 그러면 당 충전도 되고 잠도 깨면서 업무 능률이 오른다. 아니 업무와 상관없이 행복해진다. 어릴 때 두통도 낫게 해 주던 라면은 몸을 생각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꼭 먹고, 주말에는 평일에 잘 못 먹었던 봉지 과자들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여유 있게 먹는 과자는 나에게 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찐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서 같이 먹고 싶은 것처럼, 내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물해준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매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어떤 맛난 음식을 선물해줄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


사진: 계란 프라이 먹으려다 쌍란을 만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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