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story
남동생은 마음이 여린 구석이 있다. 그리고 측은지심과 박애주의가 있다.
그런데 몽고를 보니까 그런 남동생의 성품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 많이 보인다. 몽고도 참 따뜻하다.
그러다 보니 앙쥬의 미래가 걱정된다. 우주에서 하나뿐인 날 닮을 텐데 왜 걱정이 되는 걸까?
함께 사는 펫은 그 주인과 많이 닮는다고 한다. 고양이는 우릴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닮고 있다.
걱정이다. 앙쥬가.
몽고가 직접적으로 다른 고양이를 만난 것은 세 번이다.
처음은 장가가기 프로젝트의 '두니'라는 샴 냥이였고, 두 번째는 호랑이 체격의 터키쉬 앙고라, 세 번째가 앙쥬인 것이다. 이 세 마리의 고양이를 만나면서 몽고는 언제나 한결같은 친절과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앙쥬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어도 자신이 쓰던 것과 누리던 것을 나누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어른의 모습이다.
심지어 앙쥬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고 있다. 수컷 주제에...
그의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눈물이 난다.
버릇처럼 몽고에게서 젖꼭지를 찾는 앙쥬나 그 젖을 물리고 있는 몽고나...
앙쥬의 면역력을 높이려고 어미와 더 많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아깽이의 모습이 금방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린 사료, 간식, 몽고의 사료까지 먹으면서, 이가 아프면 집안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씹으면서도, 몽고의 젖을 빤다. 인간의 아가들이 엄마 젖을 먹으면서도 평소에 신생아 쪽쪽이를 문 것과 같은 것일까?
몽고는 수컷이고, 젖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몽고는 앙쥬가 엄마젖을 그리워할 때마다 젖을 물리고 있다.
젖이 나오지 않고 빨갛게 부어오르는데도 몽고는 앙쥬에게 젖을 물린다.
나는 그저 그의 사랑의 크기가 크다는 것만 알 것 같다.
덕분에 앙쥬는 밤에 엄마를 찾으며 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이것 저것 몽고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고 있다.
덕분에 그녀의 유아기가 따뜻한 기억이 될 것 같다.
여러 사랑의 형태를 볼 때마다 감동하고, 마음 따뜻해지지만 그런 포근한 감정으로 끝내지 말고
나도 사랑을 나누는 통로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되도록이면 머리 아픈 게 싫어서 감정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몽고를 보면서 가끔은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따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옳다고, 그게 맞다고 주장해서 그 사람을 이긴다 해도 나에게 동점 상황에서
극적인 만루홈런을 친 것 같은 후련하고, 당당한 기분이 들겠냔 말이다. 그렇다 한 들 남는 건 이겨먹으려는,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모습만 기억에 남아 이불 킥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상으로도 너무 따지는 것은 건강에도 해롭다.
사랑하자.
할 수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