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얼굴

by 문수인



저녁을 먹고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돌려고 집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인사를 건넸다. 성큼성큼 다가와 예고 없이 불타오르는 마음을 느끼게 하는 낮 인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달빛을 품은 바람은 훨씬 가볍고 서늘했다.


바람은 혼자서는 보이지 않는다. 늘 무언가에 기대어 존재한다. 햇살 곁에서는 뜨겁고 날카롭게, 녹음 속에서는 향긋한 냄새로, 창문을 덜컥거리며 그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머무는 사물마다 다른 언어로 자신을 번역하는 바람은 어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현재의 순간을 재현하는 바람조차 찰나다. 그래서 나는 바람이 몸을 스쳐 울 때,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려 애쓴다. 잊지 않으려 한껏 들이마신다. 그 순간, 나는 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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