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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Jun 25. 2023

나 안 취했다니깐!

행동 징후로 알아보는 술 취한 인간 판별법


서래마을 현피 사건


필자가 은행을 퇴사한 후 마케팅 대행사 일을 하던 때였다. 함께 일하는 가까운 지인의 초대로 서래마을에 집들이를 가게 되었다. 일행 중에 필자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분은 술을 참 좋아하셨다. (이하 J형님이라고 하겠다.)

이날도 술이 얼큰하게 오른 J형님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 옆집 단독주택 마당을 노닐던 강아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왈왈'하고 강아지가 선공을 해왔다. 술기운에 왠지 모를 빡침을 느꼈던 J형님은 곧장 반격했다.

 

"조용히 해 이 rotoRl야"


 "야! 니가 뭔데 남의 개한테 욕을 하고 wlfkf이야?"


옆집 그 단독주택 강아지 주인이 대리 참전을 선언하고 들어왔다.


 "개한테 rotoRl라고 한 게 욕이냐 qbdtls아"


 "Tlqkfsha야 죽을래?"


이런 식으로 주둥이 공방을 주고받던 그 둘은 현피를 뜨기로 합의를 보고, 문제의 단독주택 대문 앞에서 만나 타이틀매치를 갖기로 했다. 육두문자를 입에 물고 후다닥 뛰쳐나가는 J형님이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불안했던 필자는 말려야겠단 생각에 따라나섰다.


대문 앞에서 만난 개 주인은 곧바로 허리 뒤춤에서 회칼을 꺼내 들었다. 칼끝이 아래를 향하게 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이내 J형님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았다. 찰나의 순간에 필자가 개 주인의 칼 든 팔을 잡아 막았다. 도대체 이 개주인은 집에 회칼을 왜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고작 말싸움 몇 번 했다고 이렇게 챙겨나왔단 말인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칼끝이 정수리에서 약 3cm 상공에 멈춰 선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J형님은 아랑곳 않고 달려들어 개 주인의 멱살을 쥐어 잡고 흔들었다. 술의 힘은 놀랍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경찰에 연행된 둘은 긴 시간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두 당사자는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다. 지구대에서 경찰서 형사계로 넘겨졌고 알고 보니 개 주인도 집에서 거나하게 혼술을 즐기신 후 만취 상태로 칼부림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 주인은 조서를 작성하려는 형사들을 향해 호통과 훈계를 시전 하셨다. 정부가 전국 반려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 개들이 ‘rotoRl' 소리를 듣게 해서는 안된다, 무려 한 시간을 그렇게 견권(犬權) 보호를 부르짖으셨다. 그 후 경찰서 내 유치장에 체크인하고 주무셨다. 진정 술의 힘은 놀랍다고 생각했다.


결국, 개 주인은 검찰로 송치되어 기소되었고 J형님은 술이 깬 개 주인의 사과를 받아들여 합의를 해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혐의가 가볍지 않아 합의가 되어도 처벌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술에 취했다는 건


필자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소싯적 술에 취해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웃픈 실수를 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술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 선에서만 즐기고 있다.


술에 취했다는 지점이 어디부터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말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기준으로 나누어 보았다.


■ Disclaimer

1. 본 주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기술해 본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기술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도해 보기 바란다.

2. 이 글의 내용은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고 정답이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 Key Premises

1. 인간의 알코올섭취 환경은 회식, 혼술, 음복, 반주, 접대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다루는 알코올섭취 환경은 일반음식점에서 2인 이상의 친분 있는 지인 간 술자리를 상정하여 다루도록 한다.

2. 어떤 안주를 먹느냐, 어떤 주종을 마시느냐는 글의 주제와 관련이 없으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이 5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거듭 밝히지만 어디까지나 필자의 기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단계부터는 취한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아래의 단계별 설명에서의 설정은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일반음식점에서 지인을 만난 상황으로 한다.



1단계) 안주의 시간

퇴근 후 약속은 저녁 식사와 함께 음주가 진행되는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주린 배를 달래주는 것이다. 음식과 함께 술이 들어가긴 하지만 알코올이 체내에 흡수되는 속도를 감안했을 때 아직은 알코올로 인한 정신과 신체 변화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2단계) 기분이가 좋다

술의 매력은 바로 이거로구나 싶은 순간이다. 함께한 일행들이 점차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하고 웃음소리가 잦아진다. 이때의 주요 화제는 근황 업데이트, 누군가의 뒷담화, 최근 겪은 황당 에피소드 등 비교적 가벼운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필자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소주 1병 내외에 도달했을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3단계) 알싸하게 올라온다

이제부터는 목소리도 커지고 웃음소리도 격해진다. 평소보다 손짓 발짓 제스처가 커지고 표정도 다양해진다. 1차 자리라면 음식 그릇이 거의 비워진 상태이거나, 2차 장소로 이동을 하려는 상태이다. 이때부터 취했는가의 여부를 따져보아야 할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당사자는 안 취했다고 하고 일행들은 취했다고 하는 의견 불일치가 그 이유이다. 다음의 표를 보고 해당하는 항목이 3개 이상이면 취한 것으로 간주한다.


4단계) 몸이 마ㄹ안ㄷㅡ러

이제부터는 취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기필코 인정하지 않는다. 어지러움과 혀꼬임이 나타나고 지그재그 보행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나타나는 만취자의 유형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발 이 단계까지 술에 취하지는 말자.  


무한반복형 (민폐력 : ★★★☆)

이미 한 말을 끝도 없이 반복한다. 듣고 있는 사람의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다.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이미 30분 전에 나갔을 것이다. 이 증상의 문제는 듣는 사람의 집중력을 계속 구걸한다는 것인데, 지루해하거나 말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면 자신의 말을 잘 들어보라는 요구가 계속 이어진다. 도르마무를 십만 번쯤 만난다고 생각해야 한다.


취침형 (민폐력 : ★★☆☆)

잔다. 그냥 잔다. 테이블에 엎드린다. 지하철에서도 잔다. 버스에서도 잔다. 길거리에서도 잔다. 계단에서도 잔다. 일행 중 이런 유형의 만취자가 있는 경우, 남녀에 따라 처리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만취자가 여자라면 흉흉한 세상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집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반면, 만취자가 남자라면 그냥 두고 간다.


격투가형 (민폐력 : ★★★★★)

시비를 건다.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시비를 건다. 옆 테이블에 왜 쳐다보냐고 시비를 건다. 길 가다 아무에게나 시비를 건다. 이런 유형 때문에 일행들까지 폭행사건에 연루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만취자가 여자라면 잘 달래서 집에 데려다줘야 한다. 남자라면 기절시킨다.(feat. 테이저건, 독침, 뒷목가격)


5단계) 삼가 조의를...

기억을 잃는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른바 '필름 끊김' 현상을 자주 겪는다면 알콜성 치매로 발전할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에 따라 필름이 끊겼는지를 제삼자가 분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한 일행들이 조치를 취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술은 입 속을 경쾌하게 한다.

그리고 술은 다시 마음속을 터 놓게 한다.

이렇게 해서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즉,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 된다."


철학자 칸트가 한 말이다. 술은 솔직해지는 데까지만 유용하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미성년자에게는 술을 판매하지 않고 어른에게 술을 판매하는 이유는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술에게 자신의 통제권을 넘기는 사람들은 술을 마실 자격이 없다.

대신 보건복지부 국립부곡병원에서 제공하는 알코올 중독 자가진단을 소개한다.


다만, 술의 힘을 빌어 솔직해지고 싶은 독자에게는 옛날 갬성 자극하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한다.




참고자료

- ChatGPT : "취했다는 기준"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 "술에 취한 상태 또는 과로한 때 등의 운전 금지"

- wikiHow : "술 취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

- 법률메카 : 법률QA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요?"

- 인스티즈 : "취했다는 기준이 뭐야?"

- 더쿠 : "술 취했다는 기준이 뭐야??"

- MLBPARK : 볷yt "술취했다는 기준이 뭘까요?"

- DogDrip.net : 고민 상담 판  "시발 술 취했다는 기준이 뭔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bd51bda

- 오버워치2 인벤 : Cjhcrew "술 마셨을때 '취했다'의 기준이 뭐임??"

- 오늘의 유머 : 고민상담게시판 "술취한 것의 기준은?" 파전

- THE OWL DICTIONARY : "술에 취한 정도에 관한 영어 표현"




Main Photo : Erik Mclean from Pexels

Photo : Mizzu Cho from Pixels, UnsplashHeshan Perera, UnsplashAbstral Official,

           UnsplashMotoki T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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