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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치열 Oct 28. 2020

노동법을 어기며 일하는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에 따르면 전체 노숙인 1만1340명 중 2929명이 여성이다. 25.8%가 여성홈리스인 셈이다. 하지만 여성 홈리스가 적어 보이는 이유는 잘 보이지 않고 숨어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성홈리스가 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2016년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체 노숙인의 30%가 여성이다. 2018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전체 여성홈리스는 732명이고 이 중 676명이 시설에 살고 있다. 92.3%를 차지한다. 여성홈리스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위험한 거리 생활을 피해 시설에 입소하기 때문이다.      


홈리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이다. 시설, 쪽방, 고시원, 여관, 비닐하우스 등은 비정형 주거지이므로 정상적인 집이 아니다. 따라서 시설에 사는 사람도 홈리스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홈리스였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홈리스로 내몰렸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집이 없고 일거리가 없고 정신마저 병들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제로의 삶에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혼자서는 힘들다. 사회는 이들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더위가 한풀 꺾인 10월의 어느 날,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열린여성센터'에서 서정화(58) 소장을 만났다.     

열린여성센터 5층 회의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서정화 센터장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가난해요. 그러면 여성홈리스가 더 많아야 하는데 적지요. 실제로는 적은 게 아니라 숨어 있어서 적은 거예요.“     


여성 홈리스 만나는 일을 오래 했던 분이라 서정화 소장을 만나자마자 지금까지의 인터뷰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서슴없이 털어놓고 싶었다. 숨은 여성 홈리스를 찾았지만 실패했고, 만약에 있다고 해도 인터뷰하기는 힘들 것이다라는 영등포역의 실무자 말을 전하면서 위로 받고 싶었다. 그런데 서정화 소장은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숨어 있어서 적은 겁니다.”라며 명쾌하게 첫 마디를 열었다.      

  

"저는 1999년도부터 '다시서기'센터에서 노숙인을 만나 상담하는 일을 했어요. 열린여성센터에서 일하게 된 건 2004년 3월부터예요. 15년째 여성노숙인과 모자가족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곳에 오는 분들은 정신질환이 있지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분들이나 정신질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에요. 그리고 거리노숙을 경험하신 분들, 거리노숙을 경험하지 않고 주거 위기 상황에서 바로 오시는 분들이에요.“   

  

여성 홈리스가 거리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타인의 ‘시선’이다. 평범한 사람도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산다. 노숙하는 여성은 수치심도 들기 때문에 더욱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거나 혹은 시선을 무시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하지만 여성 홈리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 앞에서 여성 홈리스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거나 숨는 방법을 택한다. 몰성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본래 모습을 감춘다. 남성용 잠바를 즐겨 입고 스포츠 머리를 하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쓰는 방법으로 최대한 노출되지 않게 한다. 밤에는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의 대합실보다 외관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 등을 이용하며 숨어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집, ‘지원주택     


“열린여성센터는 자립을 지원하는 시설이에요. 일시보호시설은 거리에서 위급한 상황에 있거나 오늘 밤 당장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분이 가는 곳 이구요. 이곳은 정신질환이 있는데 치료를 원치 않는 분들을 설득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이기 때문에 50~60%가 정신건강이 좋지 않아요. 또는 지적장애가 있는데 어렸을 때 특수교육을 받지 못해 어렵게 지내신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이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려요. 이 과정을 통해서 임대주택으로 가거나 자기만의 주택을 얻어서 독립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여성 홈리스가 집 없이 거리에서 생활한다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신건강 문제다. 정신질환은 본인이 병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치료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열린여성센터의 운영 목적은 단순히 자립 생활을 위해 2년 동안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두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이용자의 자립을 돕는 것이 첫 번째다. 따라서 시설에는 사회복지사와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근무한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는 분들은 2년 동안 열린여성센터에서 자립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직장을 잡고, 꾸준히 일해서 저축을 한다. 돈이 모이면 임대주택에 입주하도록 돕는다. 

     

"노숙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거 문제와 함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해요. 주거 문제는 집만 제공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주거 유지를 위한 복지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해요. 거리에 계신 여성홈리스들은 정신건강이 안 좋은 분들이 80~90% 예요. 그래서 이분들의 건강을 함께 돌보는 서비스가 있는 지원주택이 필요해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환청이 들리고 망상적 사고를 할 때도 있어요. 알코올 중독인 분은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없어요.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해야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요. 임대주택에서 살다 보면 다 나았다며 약을 안 드세요. 술을 끊었다고 했다가 다시 마시는 경우도 많고요. 재발하면 문제가 생겨요. 집이 있다고 독립생활이 가능한 분들이 아니에요. 누군가 옆에서 질환을 관리하고 당사자의 어려움을 상담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지원주택에는 사회복지사가 상주하고 있어요.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가 쉬워요. 일상생활 관리와 정신건강 관리를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원주택이 더 많이 공급되어야 해요."     

서정화 소장 역시 지원주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열린여성센터는 자활쉼터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홈리스를 위한 ‘씨드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 입주해서 생활하는 사례자를 소개한 글이 있다.   

  

“저는 씨드하우스의 사례관리자인 사회복지사 이주연 입니다. 안ㅇㅇ 님은 50대 후반이십니다. 40대에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하고, 절집 등을 전전하다가 정신질환이 발병하여 노숙까지 하게 되셨습니다. 노숙인시설, 정신장애인시설 등에서 7년여간 생활하다가 열린여성센터를 통해 지원주택에 입주하셨지요. 시설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꾸준히 돈을 모아 독립할 준비를 해오셨고, 현재는 질환으로 근로가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지원주택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이 곳에 살면서 느낀 점을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어요.    

 

"노숙할 때처럼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내 집이 있어 감사해요. 문을 열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이 있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있어 감사해요. 이런 곳이 천국 아닐까요?”     


임대주택으로 이사 간 뒤에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면 될 거라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임대주택에서 살다가 복약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병이 재발한다.     


"정신질환이라는 게 본인 스스로 이 병이 나한테 어떤 병이고 어떻게 약 관리를 해야 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몰라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고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지만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 정신질환은 조금만 약 복용을 소홀히 해도 환청이 들리고 망상을 하게 돼요. 그리고 재발하지요. 재발하면 삶이 무너져요. 저희 시설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두 분이 있었어요. 상태가 좋아져서 두 분이 같이 방 세 칸 짜리 임대주택을 구해서 나갔어요. 친구처럼 사시라고요. 처음 한 2년은 행복하게 잘 사셨어요. 그런데 약을 잘 안 드시고 관리를 못 해서 결국 재발했어요. 망상 때문에 옥상에다 이불을 쌓아놓고 잠을 자는 거예요. 그분들을 다시 상담하고 설득해서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원점으로 돌아간 거죠.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그냥 집만 드려서는 지역사회 독립생활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된 케이스였어요. 그래서 사회복지사가 가까이에서 돌보는 지원주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힘든 곳이 노숙 쪽 일이 아닐까하는 내 짐작은 기우였다. 서정화 소장은 자신의 일을 ‘역동적’이라고 했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몸을 숨기고 사는 여성 노숙인을 만나는 일이 역동적이라니,  갑자기 뒷골목에서 정의의 사도가 ‘짠’하고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는 짜릿한 장면이 연상됐다. 우울함 가득한 '어둠'에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밝음'으로 이동하며 ‘희열'을 맛보는 직업이라니 괜찮은 직업 같다. 그분들이 서서히 변하는 모습을 볼 때, 자립해서 열린여성센터를 떠날 때, 임대주택으로 가서 "행복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역동성과 희열을 느끼며 일하는 곳


"지난주 금요일에 식구들(열린여성센터에 계신 분들) 두 분하고 상담을 했는데 저한테 '소장님,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러는 거예요. 오후와 밤, 하루에 두 번이나 고백을 받으니까 너무 기뻤어요. 두 분 모두 굉장히 힘든과정을 거치고 이제야 마무리되었거든요. 직업을 구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세요. 이제 여기서 독립할 날만 남았어요.     


제가 앞에서 역동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힘든 상황을 거치고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건강도 회복하고 일자리도 얻고 저축을 하고 임대주택을 얻어서 독립하고. 처음에 이곳에 올 때는 핸드캐리어 하나 들고 왔는데 독립해서 나갈 때는 트럭 한 대로 이사 가는 거 보면 뿌듯하죠. 주거 위기 상황에서 거리에 나앉을 지경까지 되어 시설에 왔는데 1년 또는 1년 반 만에 독립해서 나간 거잖아요. 이런 과정이 저는 되게 역동적이라고 생각해요."     


노숙인 상담을 시작으로 여성홈리스 만나는 일을 시작한 지 20년 된 서정화 소장은 이 일이 자신에게 잘 맞는 직업이라면서 소회를 밝혔다.    

  

"대학교 졸업 후 성수동에서 노동운동을 했어요. IMF가 터지고 작은 공장에서 숙식하던 분들이 공장 문을 닫고 폐업하자 많은 분이 거리에 나앉게 되었어요. 그때 같이 노동운동 하던 선배가 노숙인들 상담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저보고 같이 하자고 해서 이쪽으로 오게 되었죠. 저는 원래 사학을 전공했는데 노숙 쪽 일을 하다 보니까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했어요. 


이 일은 종합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일이에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분을 만나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의 마음도 돌봐야 하고 경제적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많이 알아야 해요. 사회복지사가 아는 만큼 노숙인 분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줄 수 있거든요. 10개를 알고 있으면 10개밖에 못 주고 100개를 알고 있으면 100개를 줄 수 있어요. 그 차이로 1년 걸릴 자활 기간이 6개월로 줄어들 수 있거든요.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진도 많아요. 생활시설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365일 시설을 비울 수가 없어요. 지원되는 인력이 많지 않으니까 노동법을 어기면서 일하고 있지요."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서 역동성과 희열을 느낀다는 서정화 소장, 마지막으로 꼭 당부할 말이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사회가 이분들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분들은 본인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거고 열심히 살았어요. 또한 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고요.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구조상으로 이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돕지 못했어요. 그 점을 이번 기회에 잘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는 '숨어있는 여성 홈리스'를 찾아내야 해요. 그분들이 숨어서 지내지 않고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기도원 같은 데서 몇 달씩 사는 분들이 있어요. 중년여성들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교회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하잖아요. 이분들도 처음엔 기도하러 가요. 돈을 내고 한두 달 있다가 돈이 떨어지면 눈치가 보이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요.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까 이곳저곳의 기도원으로 옮기면서 몇 년을 살기도 해요. 실제로 기도원 쪽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었어요. 혹시 취재가 가능하면 그런 곳에 계시는 분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서정화 센터장이 준 미션이 몇 날 며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싸서 기도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녀들을 만나도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자신의 가슴아픈 얘기를 처음보는 사람에게 털어놓을리 만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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