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10세 어린이와 그 부모가 바닷속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극단적 '선택',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저지른 것은 극단적 선택이 아닌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다.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나 삶의 고민거리가 생기면 지도를 보듯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꺼내 펼친다. 그렇게 펼친 책에는 나보다 앞서 어린이에 대해 고민한 흔적과 그에 대한 결론이 쓰여있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5세 어린이에 대한 기사를 읽고 쓰신 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020, 사계절) 164.p
베란다에 서서 죽고싶다는 욕망을 떠올리며 아래를 바라보았던 김소영 작가는 결국 삶을 선택했다. 손을 내밀어주는 이가 있었고, 그 순간 그를 떠올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김소영 작가는 생각한다. '나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어린이에게는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라고.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수많은 아동인권 의무교육들과 아동보호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끝을 모르고 발생한다. 김소영 작가의 말 '나아가려면 맞서야 한다'는 말대로 맞서고 싶지만 이미 노력하고 있음에도 발생하는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린이 돌봄노동을 하면서 나는 아동학대 의심을 끊임없이 받아왔고 나 스스로도 끊임없이 의심해왔다. 연일 보도되는 '아동 기관에서의 아동학대' 뉴스 때문인지 처음 사람들조차 내 직업을 소개하는 순간 "어, 혹시 애들 학대하는 건 아니죠?"같은 말을 해댔다. 아동학대 기사 링크를 나에게 보내며 '당신도 조심하세요'라고 한 적도 있었다. 뭘 조심하라는 건지? 당신도 욱하는 마음에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건가? 그쪽보다 내가 훨씬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길.
의심의 눈초리들이 새장이 된 것 같았다. 그 새장은 새의 몸에 꼭 맞게 만들어져있어서 새는 가만히 서있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게다가 새장이 있는 곳 주변에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있다. '어떻게 하나 보자' 팔짱을 끼고 선 구경꾼들. 아, 구경꾼이 잠시 사라졌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하루 종일 나를 비추고 있는 CCTV를 누가 언제 돌려볼지 모르니까. 구경꾼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어린이를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는 것은 언제든 아동학대로 의심받을 수 있다. 기적의 '일체유심조'인 셈이다.
물론 의심만으로 교사를 법정에 세울수는 없겠지만 의심받는 것, 의심받을까 봐 조심하는 것만으로도 교사는 힘들다. 학부모의 허위 신고로 이 일에 회의감을 느껴 그만둔 교사를 나는 여럿 보았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군말없이 아동학대 의무교육을 받는 이유는, 기꺼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를 자처하는 이유는 어린이가 예뻐서도 아니고, 귀여워서도 아니고,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다. 어떤 어린이든지 마땅히 아동 권리가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도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다.
아동학대의 82%는 부모에게서 일어난다. 그러나 '가족의 일은 그 가족이 알아서 하게 둬야 한다'는 해묵은 한국의 정서 때문인지 아동학대, 가정폭력, 그 무엇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럴 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아동학대는 일어나고 자식을 살해하는 부모마저 존재한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김소영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혼자 밤 산책을 하면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 울었다. 우는 것도 자기만족인 것 같아서 참으려고 걷기 시작한 건데 소용이 없었다.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까지 악하고, 왜 그런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걸까. 이게 처음도 끝도 아니잖아. 이런 세상을 나는 계속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을 어떻게 저주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런데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 있는 어린이들이 있지 않나. 대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나 하나가 경멸해도, 나 하나가 사랑해도 세상은 그대로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020, 사계절) 164.p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려면 직면해야 하기에, 이 고민의 시간, 지지부진한 과정도 결국은 나아가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