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이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아들이 물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여행을 간 곳에서, 모두가 잠에 들고 부자가 남은 자리에서. 술도 마셨고, 기분도 좋고. 그래서 술김에 물었다. 하지만 마음은 말투만큼 가볍지 않았다. ‘그때 왜 그랬어요?’라는 말을 겨우 집어넣고 대신 꺼낸 말이었으니까.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아버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하고 있어서.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그 기억은 ‘화목한 우리 가족’이라는 칸에 꽂혀있다. 그 기억의 힘은 대단해서, 사라지지 않고 다른 칸들로 번졌다. 예를 들면 ‘잊고 싶어 처박아 둔 잡동사니’ 칸이라든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선명한 것’ 칸으로. ‘나의 단점’ 칸에서도 그 기억을 찾아낼 수 있다.
내게 이런 기억은 많지 않다. 아픈 경험이 적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슬프고 나쁜 것을 저장하는 기능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생이 따뜻하고 행복했으니 불행한 기억 하나쯤은 스크랩해둬야 한다고 끼워 넣은 것처럼, 마치 불행을 대표하기라도 하듯 그 기억이 존재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픈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기억은 점점 더 힘이 강해졌다. 나를 이루는 근간에 그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사람들은 아마도 그걸 상처라고 부른다.
별 것 아닌 그 기억이 문득 고개를 치밀 때가 있다. 일기를 쓰다가, 성격검사를 하다가, 침대 밑에 쪼그려 앉다가, 거울을 보다가 어린 시절로 휘리릭 되돌아간다. 울고 있는 안쓰러운 아이가 보인다. 괜찮다. 나는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때,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때, 그때는 다르다. 그땐, 내가 그 아이를 울리고 만다. 그리고 후회한다. 후회해도 아무 상관없는 후회다. 아버지를 닮은 것에 대한 후회다.
"있다."
아버지는 내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그건 술김에 하는 말이 아니었고, 농담으로 하는 말도 물론 아니었다. 하나도 당당하지 않아서, 그래서 오히려 당당해 보이는, 그래서 아들을 당당하게 만드는 그런 말이었다.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 있다."
눈물이 솟았다. 그때, 미안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늘, 미안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힐난하려는 내 마음을 다 알고, 그걸 숨기려는 것도 다 알고, 모든 걸 다 알고, 아니,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언젠가, 네가 허락한다면 언젠가 꼭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기억을 ‘살면서 모두가 하는 작은 실수’라는 칸에 넣기로 했다. 아직도 여전히 그 기억의 힘은 커서 내 머릿속 곳곳에 들어가 있다. 너무 선명해서 흐릿해질 여지도 두지 않고 거기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은 그냥 기억으로 거기에 있다. 이제는 상처가 아니라 작은 흉터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 그게 뭐 어떻다고. 다들 흉터 몇 개쯤 있다. 그런 것 정도 있어도 괜찮다. 어차피 다 나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를 닮아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