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 연습 Oct 02. 2021

푸념을 버리는 취미

 푸념을 버리는 취미가 있다. 크고 작은 고민, 피해자로서의 역사, 원망조차 섞이지 않은 신세한탄. 그런 것들을 잘 듣고, 품에 잘 들고 다니다가, 누가 보지 않을 때 슬쩍 버린다. 나조차도 모르게 버린다. 사실은, 잊어버린다는 표현이 맞다.


 푸념을 버리기 위해서는 일단은 모아야 한다. 예전엔 요령이 없어서 스스로 진지한 사람인 체 하면서 모으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2:2 미팅 같은 곳에서 기껏 한다는 얘기가 "무슨 생각하면서 살아요?" 같은 거였으니까. 그러나 요즘은 힘들여 모으러 다니지 않아도 자연스레 모인다. 그런 세상이다. 힘들지 않으면 외로운 세상. 푸념이 인사가 되고, 대화 주제가 되고, 다음에의 기약이 되는 세상.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묻지 않아도, 사람들은 가습기처럼 푸념을 폴폴 뿌린다. 


 며칠 전의 택시에서도 그랬다. 몇 마디 짧은 대화 만에 기사 아저씨가 힘든 마음을 폴폴 내놓았다.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LPG 가격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 불규칙적인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야식을 포장해가는 승객이 밉다는 것,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해서 택시기사가 제일 힘든 직업인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좋다. 나는 푸념에 갖가지 푸념들을 더 붙여서 덩치를 키운다. 효과 좋은 접착제를 가지고 있다. “아, 그렇겠네요.”, “그거 좀 심한데요?”, “와, 진짭니꺼.” 상대의 말투를 살짝 첨가한 연기로 상대의 대사를 촉구한다. 푸념은 푸념을 낳고, 주위엔 매캐한 덩어리가 연기처럼 쌓인다. 그러다 보면 푸념은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잠깐만. 이대로는, 푸념으로 남을 수 없겠는데? 이제 더는 푸념 정도가 아니겠는데?


 이윽고 찾아오는 잠깐의 정적. 그것은 깨질 때 경쾌한 소리를 낸다.     


 “그래도, 내가 참고 기분 좋게 생각하고 좋은 일 한다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래야 안 되겠습니까.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건데.”


 나는 택시 뒷문을 열며, 덕분에 잘 왔다고,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말로 그의 푸념들을 잘라낸다. 가장 멋진 말만 거기에 남겨두고, 내 품에는 그의 푸념을 한가득 담고. 문을 닫기 전, 기사 아저씨의 우렁찬 작별인사가 들려온다.


 “청년도 좋은 하루 보내요!”


  연기가 걷히고, 좋은 하루가 다시 열린다. 푸념들을 덜어낸 새로운 하루가 하나 더 늘어난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승객의 좋은 하루로 이어진다. 푸념이 있던 자리에 흐뭇한 마음이 남는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아직 말이 되지 못했던 내 푸념들마저 땅바닥에 다 흘려버리는 것이다. 

이전 10화 유급휴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