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본직업별명세도 제194호 신용안내 조선남부

by 뚜벅이
<사진-<釜山府: 大日本職業別明細圖,第194號 信用案內 朝鮮南部>東京 : 交通社,1930(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이 지도는 일본어로 된 1930년대 지도로 참으로 흥미로운 자료이다. 대상 지역은 ‘조선남부’로 되어 있는데, 발행연도인 1930년도에 일본인이 많이 이주한 해운대, 진영, 양산, 물금, 부산부, 구룡포, 장생포, 동래온천, 울산, 밀양, 방어진, 마산, 감포의 경상남북도의 일본인이 많이 이주한 어촌에 한정하여, 실제의 조선 남부를 아우르고 있지는 않다. 식민지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들 중심 지도이다. 유사한 지도로 <대일본직업별명세도 조선전라남도>(1929)가 확인된다.

이 지도에서 감포는 실제 지역의 크기, 영향령에 비해 크게 강조되어 있다. <부산부>라는 글씨 바로 옆에 감포가 지도 정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구룡포나 울산보다 크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일까?


이 지도의 한 가운데에 <부산부>라는 제목 옆에 <감포>지도가 크게 나와 있다.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사진-「大日本職業別明細圖 朝鮮南部」중 감포 부분만 발췌>

사진 필자 번역본 지도


지도에 나타난 장소는현재의 감포공설시장에서 해국길을 따라 읍사무소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1930년대 감포 일본인 거주지의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일본 국회도서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에서 디지털화하여 공개하고 있다.


1930년대 감포는 식민이주어촌으로 가장 번성한 시기로, 구룡포와 더불어 고등어 어업의 중요한 근거지로서 경북에서 고등어어업의 황금시대를 낳았다. (요시다 게이이치:430) 이 시대를 알려주는 자료 중 하나가 지도 「대일본직업별명세도-제194호 신용안내 조선남부(大日本職業別明細圖 朝鮮南部)」이다. 현재 도시 규모로 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데, 부산과 나란히 감포가 함께 실리게 된 이유는 어업의 활황을 맞아 일본인들이 대거 밀려온 추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도 이름에 있는 대일본직업별명세도는 시리즈물로 상세도라는 지도 이름이다. 일련번호 194호는 도쿄교통사에서 발행한 명세도에 1929년부터 붙인 일련번호이다. ‘신용안내’란 납세액을 기준으로 해서 신용있는 점포를 게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일본직업별명세도」는 1930년 도쿄교통사(東京交通社)에서 제작한 54X77 크기의 1장 지도이다. 세로로 2번 가로로 6번 접어 사무 봉투처럼 휴대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이 책 표지에 전체 지도를 실었고, 위 사진은 감포부분만 발췌하고 번역을 하였다. 「대일본직업별명세도」에서 감포는 부산 다음으로 큰 비중을 가지고 지도 정중앙에 위치해 있고, 부산의 사진이 9장, 구룡포는 1장도 없는데, 감포 사진은 8장이나 실려 있다. 가노는 상업적 지도의 성격상, 납세액에 기반하여 점포를 실었지만, 사진게재유무나 광고의 크기가 다른 것은 추가로 광고료를 받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뒷면에 실려 있는 감포 일본인들이 많은 비용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감포의 일본인들 수와 재력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명세도」는 극히 좁은 지역을 대상으로 발행되었기에 향토사, 도시역사, 과거 도시구획 정비와 복원 등에 맞물려 명세도의 목록화, 제작방식, 특징,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연구가 진적되고 있다고 한다.(河野敬一<近代期における市街地図の刊行と利用-東京交通社による「職業別明細図」刊行の分析-><常磐大学人間科学部紀要 人間科学>(第25巻第1号,2007.10, p.5-22)


지도 제작자는 기타니 사이치(木谷佐一, 나중에 개명하여 쇼스케(彰佑))이다. 그는 1917년 나이 40세에 도쿄교통사를 일으켜 지도간행사업을 시작했다. 기타니 사이치가 제작한 「대일본직업별명세도」 는 통칭 ‘상공지도’라 불린다.(地図資料編纂会, 岩田豊樹, 松沢光雄著「商工地図をよむ : 昭和前期日本商工地図集成 第1期・第2期 解題」<昭和前期日本商工地図集成―第1期・第2期解題―>柏書房, 1988, p.1-39) ‘상공지도’는 개별 상점명과 회사명이 기재된 1945년 이전 일종의 도시안내지도이다. 여러 민간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도쿄교통사의 『대일본 직업별 명세도』는 일본 전역의 주요 도시를 망라하고, 타이완, 조선, 구만주까지 제작 대상에 이르렀다.


엄밀한 측량에 기반한 관에서 제작한지도와 비교해서, 민간업자가 만든 ‘상공지도’는 기재 대상이 선택적이어서 그림 전체가 상당히 변형되어 있지만, 축척중심의 지도에서 볼 수 없는 편리성과 직관적 이해가 가능하다. ‘상공지도’는 지도에 기업이나 점포를 게재하여, 광고료 요금을 징수하고, 예약주문제로 발행 부수를 결정해서, 잉여 부수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시가지는 엷은 오렌지색, 도로는 흰색, 철도나 버스 노선은 붉은색, 하천이나 연못은 푸른색으로 표현하였다. 지도 앞면에는 정확한 축척이 아니라, 세로 숫자와 가로 이로하순으로 구획을 나누어, 검색을 쉽게 했다. 세로는 14칸, 가로는 20칸으로 구획되어 있다. 뒷면은 직업별 일람(광고)으로 되어 있어 상점 등의 건물 사진이 게재되었다. 상호를 업종, 전화번호, 지역명을 게재하고, 앞면 지도의 세로 숫자와 가로 이로하순(いろは順은 일본어의 히라가나 50음을 빨리 암기하기 위해 노래로 만든 것인데, 흔히 ‘가나다’순처럼 배열할 때 쓰임)으로 표시하였다. 또한 수록지역 안내와 철도노선도, 안내기를 제시했다. 당시 해당 지역에 존재한 다양한 일본인 기업·점포를 알 수 있고, 지역의 사찰, 관공서, 사진도 삽입되어 있어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 일본인들은 식민지 전 시기에 걸쳐 조선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들을 위해, 지도, 지역 안내와 홍보 책자, 우편엽서 등을 다수 발행했는데, 이 지도도 그중 하나이다.


기타니 사이치는 「대일본 직업별 명세도의 특색및 효용」(1937)에서 스스로 「상공지도」의 제작 컨셉 11개 항목을 열거했다.

1. 본 지도는 전국 각지를 수년마다 개판하여 신문지법에 따라 매달 10일, 25일 정기간행물로서 계속 출판한다.

2. 본 지도는 출판보국의 목적으로 전국적 통일을 도모하고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사회공공에 기여하는 바 크다.

3. 본 지도는 「대일본직업별 주소입 색인부 신용안내 명세지도」로, 지난 1918년 이래 독창적으로 저작하여 각지에 일정한 방침을 가지고, 마침내 전국의 완성을 보았다.

4. 본 지도 제본은 그것을 더하고 빼는 식이어서 후일 개판 지도는 그때마다 교체를 자유롭게 하고 항상 개정하여 현황을 유지하는 것을 일대 특색으로 한다.

5. 복잡다기한 현대의 용무를 확실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본 지도는 뒷면 직업별로 하여 모든 선택을 자유롭게 하고 색인으로 적확하고도 신속하게 뒷면 각 인물의 주소 위치를 찾을 수 있게 했다.

6. 본 지도는 국세, 부현세의 납세액을 표준으로 해서 신용있는 점포의 주소는 남김없이 게재하고, 그 영업 종목, 전화번호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또한 명소 고적, 사지, 관공서, 학교, 은행, 회사, 공장, 병의원, 저명상점 및 명망가는 사진을 통해 소개하였다.

7. 그로 인해 각지의 정세를 비교 대조 고찰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종류의 입안 계측에 이바지할 수 있다.

8. 상공업의 진보를 돕고 각지 산업의 개발을 촉진한다.

9. 주택의 표찰, 영업자의 간판처럼 모든 상공업자의 가장 신뢰할만한 나침반이다. 모든 가정의 가장 절실한 쇼핑안내이다.

10. 이전, 개업의 교재로서 취미 오락 속에 실익이 있고 한편 직업별 전화번호부의 대용도 된다.

11. 여행, 방문, 사교, 거래, 운수, 교통상 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위 「商工地図をよむ」에서 발췌하여 필자 번역)


한 장의 지도이지만, 조선남부라고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상단 중앙에 부산, 그 오른쪽에 감포, 구룡포, 울산 지도가 기재되어 있다. 지도 하단 왼쪽부터 방어진, 장생포, 동래온천, 해운대, 진수시장 지도가 있다. 따라서 1930년 당시 감포의 상공업자들의 정보를 아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6번 항목에서 제시한 것처럼 납세액을 기준으로 신용있는 점포의 주소를 게재하고, 그 영업 종목, 전화번호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또한 명소나 관공서, 학교, 은행, 회사, 공장, 병의원, 저명 상점 및 명망가는 사진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감포의 대표적 일본인 상업, 어업자, 점포를 망라하고, 주요 관공서와 사진을 게재하여, 1930년대 감포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앞면은 감포 시가지 일본인들 상호를 중심으로 시가도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중요 시설은 따로 사진으로 제시하였다.


뒷면은 지역별이 아닌 업종별로 앞면 지도에 등재한 일본인들의 상호와 직업을 광고하였다. 상업적 지도의 성격상, 뒷면에 실려 있는 감포 일본인들이 많은 비용을 내었기에, 조선 남부 전체 지도에서 감포 시가도가 지도 중앙에 실렸다고 보인다.


사진 <대일본직업별명세도> 뒷면


지도에 나타난 중심 시가의 기본 구성은 현재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식민이주어촌의 시가지 구성은 동서남북이 명확하게 구획되어 있다. 지도의 한가운데 도로를 따라 상가가 형성되었다. 현재 감포 육거리에서 척사로 빠지기 직전까지, 감포 읍내하면 떠올리는 시가지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한 지역이다. 남북으로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위에서부터 에비스초, 나니와초, 혼초 1,2정목이 생겼다. 오른쪽은 항만이고, 왼쪽은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이다.


1) 먼저 지도의 왼쪽부터 첫번째 구역인 고대안 쪽 높은 지역에는 감포신사와 감포학교조합, 고야산포교소, 조동종포교소 등 종교 관련 시설이 모여 있다. 아직 읍으로 승격되기 전이어서, 읍사무소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2) 지도에서 신사 계단을 내려와 현재 감포안길로 내려와, 극장, 목욕탕, 우편소, 의원이 있는 두번째 구역이다. 인접하여 음식점, 여관 등 일본인들의 유흥과 여가를 위한 공간이 형성되었다. 어획고 증가로 늘어난 수입을 소비하고 유흥을 담당할 구역이 빠르게 들어섰다. 산요칸, 마쓰시마, 호라이테이, 이치후쿠, 히노데 요리점이 보인다.

3) 지도에서 현재 감포대로를 따라 왼쪽에 에비스초, 나니와초, 혼초 1,2정목이 감포의 중심가였다. 길을 따라 여러 수산업, 상업 관계자들의 점포와 사무소, 창고가 있다. 오히데구미사무소, 마쓰오카 수산, 감포어업조합 등이 보인다.

4) 북쪽으로는 기타하마초(北港町)이다. 왼편으로 감포소학교와 주재소가 있다. 도로 반대편 해안쪽으로 어선을 수리하고 정비할 수 있는 스와키 철공소와 다카하시 조선소, 통조림공장이 있다.

5) 남쪽으로는 쇼와초와 매립신마치 1, 2정이 형성되었다. 매립 지역이다. 현재의 육거리와 감포시장 근방이다. 항만쪽으로 감포 철공소와 감포금융조합이 있다. 남쪽으로 다쓰노 수산, 감포전기, 감포양조, 다쓰노자동차 등의 일본인 상점과 공장이 있다.


지도의 남쪽 하단에는 「조선민보(朝鮮民報)」지국이 있다. 「조선민보」는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일본어로 발행되는 일간신문이었다.(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사장으로 1905년 「대구실업신보」가 전신으로 대구를 근거지로 해서 경주, 포항, 김천, 안동 등에 지국을 두고, 각 지역에 통신원을 두었다) 일본어 신문의 지국이 감포에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일본인들이 감포에 많이 거주하고, 기사 거리가 많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립지가 있는 것은 배후지가 부족한 어촌의 특성상, 일본인들은 매립을 통해 자신들만의 생활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박정석,2017:100)


6) 시가지 변두리 북쪽과 남쪽에 조선인 마을이 두 군데 표시되어 있다. ‘조선인부락(鮮人部落)’과 ‘조선인마을(鮮人街)’이다. 아주 좁게 그려져있는데, 일본인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 왜곡일 것이다.

7) 지도 오른쪽은 항만이다. 항만 쪽에 감포 소방조(消防組)가 있다. 나무 가옥이 많아 화재가 잦은 일본에서는 에도시대부터 소방시설을 중시했는데, 식민지에서도 그런 시가지 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가지 구성은 구룡포와 아주 유사한 구조를 보이지만, 1930년에는 구룡포보다 감포 시가지가 정비된 양상을 보인다. 식민지에 온 이주민들은 편의상 커뮤니티를 이루어 한 지역에 모여 살기 마련이다. 서울 용산이나 수원,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감포의 일본인들도 좁은 시가지에 모여 살았다. 우편소, 주재소, 학교는 식민 이주어촌이 조성되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설치된 주요 기관이었다. 정보와 통신 전달, 치안 유지 및 자녀교육은 식민 이주자들의 안녕과 지속을 위한 바탕이자 안전장치였다. 이런 필수 기관과 더불어 종교 시설인 신사가 있었으며, 주요 경제기구로는 금융조합이 있었다. (박정석, 2017:311)


일본인들이 개발했다는 감포에 조선인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원래 어업을 중시하지 않았던 조선에서 어민들은 해안가를 따라 작은 군락을 이루고, 대다수는 반농반어에 종사했다. 지도에는 시가지의 가장 변두리 북쪽과 남쪽에 단 두 군데 기재되어 있다. 인구가 훨씬 많은 조선인들의 거주 지역이 있음에도 지도에서는 이주 일본인들이 집중된 감포 시가지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고, 조선인의 거주지는 비가시화되어 있다.


가히 일본인, ‘그들만의 공간’이라 할 만하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식민지 시대 일본인들의 흔적을 앞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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